전통적인 기업의 ‘성장공식’처럼 여겨졌던 물적 분할을 통해 최근 상장한 LG에너지솔루션(LG엔솔)발(發) 후폭풍이 거세다. 대규모 투자금 확보엔 유용한 물적 분할이 , 한편으론 모회사의 주가 급락을 부른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소액·일반 주주의 격렬한 반대 속에 기업들의 물적 분할 계획 포기도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주와 기업이 서로 상생할 절충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사실 물적 분할에 이은 상장은 상법 등 관계법령상 위법이 아니다. 오히려 이사회 및 주주총회를 거쳐 결정된 물적 분할에 이은 상장을 이행하지 않으면 경영진이 배임 혐의를 받을 수도 있다.
문제는 분할한 자회사가 상장하면서 가치가 올라갈수록 모회사가 가진 자회사 지분의 영향력이 약화해 주가가 떨어질 가능성이 크고, 이는 기존 기업에 투자했던 소액·일반 주주 권익의 침해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실제 LG엔솔이 상장한 지난달 LG화학의 공매도 거래대금은 1조385억 원(일평균 519억 원)으로 공매도 대상인 코스피200·코스닥150 지수 구성 종목 중 가장 많았다. 기업이 뭐라 해도 시장에선 물적 분할에 이은 상장을 모기업의 주가 하락으로 봤다는 얘기다. 개미 투자자들이 물적 분할을 ‘쪼개기 상장’이라고 비판하며 반대하거나, 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배경이다.
여파는 시장에서 확인되고 있다. 물적 분할에 나섰던 기업들이 기존 계획 자체를 잇따라 재검토하거나 보류하고 있어서다.
CJ ENM은 지난해 11월 물적 분할 후 예능·드라마·영화·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제작하는 별도의 스튜디오 설립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지만, 소액주주의 반발과 8거래일 연속 주가가 하락하자 이달 9일 이와 관련한 다양한 방안을 재검토 중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올해 ‘쪼개기 상장’이 유력하다고 점쳐졌던 카카오엔터와 카카오모빌리티의 경우에도 카카오의 전면 재검토 입장 발표와 함께 일시정지됐다.
에둘러 자회사를 떼내거나 주주 달래기에 나선 기업도 있다. KT는 물적 분할이 아닌 현물투자 방식으로 클라우드·인터넷데이터센터(IDC) 사업을 분리해 신설법인 ‘KT클라우드’를 설립한다고 발표했지만, ‘꼼수 분할’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올 4월 1일부터 세아베스틸 지주와 신설 법인 세아베스틸로 물적 분할해 중간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기로 한 세아베스틸은 1주당 1,500원의 역대 최대 현금 배당과 50억 원 규모 자사주 취득 등 기존 주주 달래기에 나섰지만 역시, 비판적 여론을 의식한 조치란 평가가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상법의 사각지대’라고 불리는 물적 분할에 대해 법령 개정을 통해 보완해야 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정치권에선 주식매수청구권 부여나 신주인수권 배정 방식 등이 거론된다.
일각에선 미국의 주식교환청구권(스플릿 오프)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모기업 주주들에게 모기업 주식과 신설 회사의 주식을 교환할 권리를 주고, 모기업 주식의 일부를 소각해 가치를 보장하는 방식이다. GE나 CBS코퍼레이션이 라디오 부문을 분할하면서 사용됐던 방식이다. 심승규 일본 아오야마학원대 국제정치경제학부 교수는 “기존 회사 주주들에게는 일정 부분 보상을 할 수 있게 되고, 대주주들은 자회사 경영권 확보를 할 수 있는 중간적 대안”이라면서 “다만, 기본 주식과 신규법인 주식 간 교환을 위한 황금비율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물적 분할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특별요건을 법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물적 분할은 주로 오너 일가인 대주주의 자회사 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이는 모기업 주주의 신주 인수권을 침해한다는 입장이다.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법 개정을 통해 주주총회에서 물적 분할과 관련 결의할 때 최대 주주와 특수이해관계인은 의결을 못 하게 하고, 외부 주주와 일반 주주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중요 의사결정에서 이해관계당사자는 회피나 제척을 하는 절차를 물적 분할에 적용하자는 것이다.
주주대표소송을 통해 법원의 판단을 받아 해결하자는 주장도 내놓는다. 상법상 주주들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대상에 지배주주가 포함돼 있지 않지만, 법원에서 지배주주가 실질적으로 이사회를 지배하고 있어 책임을 물릴 수 있다고 해석하는 판례가 누적되면 법 개정 없이도 제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만, 대기업 상대 소송이 장기간 소요되고 사안별로 다른 판단이 나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