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운 고조에 국제유가가 하루가 다르게 치솟자, I(인플레이션) 경계령이 퍼졌던 세계 경제에 S(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감도 확산하고 있다.
유가 급등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면서도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아, 향후 글로벌 경제가 '불황 속 물가만 오르는' S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원유 수입에 100% 의존하는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유가 상승에 민감하게 반응해, 스태그플레이션을 더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14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3월물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2.53% 오른 배럴당 95.46달러로 마감하면서, 2014년 이후 처음으로 100달러를 돌파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뜩이나 원유 생산이 급증하는 수요를 쫒아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 세계 원유시장 점유율 2위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자 유가가 급등한 것이다.
현지에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현실화하면 유가 100달러 돌파는 시간문제라고 보고 있다. 최근 JP모건은 "러시아발(發) 원유 공급 중단으로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까진 쉽게 상승할 것"이라며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면 배럴당 150달러까지 치솟을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고 예상했다.
국제유가 상승은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선포한 세계 경제를 한계 상황으로 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글로벌 유가 정보업체 OPIS의 톰 클로자 글로벌 에너지 분석가는 뉴욕타임스(NYT)에 "일반 휘발유가 1갤런당 1센트씩 오를 때마다 에너지 소비자들은 하루에 400만 달러의 비용을 떠안게 된다"며 "우리는 경제 구석구석에 침투하는 인플레이션으로 한계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치솟는 유가가 자칫 세계 경제를 S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지고, 유가가 경제 성장의 발목까지 잡는다면 스태그플레이션 공포는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1970년대 오일쇼크 때도 세계 경제는 고물가와 저성장의 늪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다.
유가 급등은 석유 수입국인 우리 경제에도 직격탄이다. 에너지를 수입해 쓰는 기업의 비용이 커지면 소비자물가도 잇달아 상승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날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제유가 오름세에 지난달 수입물가지수(132.27)는 2012년 10월(133.69) 이후 무려 9년 3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유가 상승은 국내 주력 산업의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으며 전체 성장률을 끌어내릴 수도 있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치솟으면 한국 경제성장률이 0.3%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연구원은 특히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1%포인트 상승하는 반면, 경상수지 흑자는 305억 달러, 우리 돈 약 37조 원이 증발할 것으로 봤다.
우리 경제가 고유가발 스태그플레이션에 더 취약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은도 보고서를 통해 "지속적인 고유가로 가계 실질소득이 감소하면 임금인상 요구가 높아지고 소비가 위축되는 등 악순환이 초래된다"며 고유가의 위험을 경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