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 6개월 감금… 악조건 견뎌낸 韓기업, 매출 반등 이뤘다

입력
2022.02.1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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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남부 코로나 악몽, 그 이후

편집자주

국내 일간지 최초로 2017년 베트남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가 2020년 2월 부임한 2기 특파원을 통해 두 번째 인사(짜오)를 건넵니다. 베트남 사회 전반을 폭넓게 소개한 3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베트남의 오늘을 격주 목요일마다 전달합니다.


지난해 상반기 호찌민시 등 베트남 남부 지역에 뿌리 내린 한국기업 수는 3,500여 개에 달했다. 이들은 80만 명의 현지인을 고용한, '베트남 경제성장의 중심 축'으로 불리며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같은 해 7월 15일 베트남 정부는 한국과 어떤 대화도 없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확산을 막기 위해 '기업 봉쇄령'(3 On Site)을 나흘 뒤 발동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공장을 가동하려면 전 직원이 지정 장소에서 봉쇄 해제 전까지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상 감금 명령이었다.

전염병의 공포 앞에 한국과 나눈 우호의 시간은 희미해졌다. 모든 기업들은 성(省) 간 이동 봉쇄로 원부자재 수급에 난항을 겪었고, 예측가능성이 없는 방역 행정 탓에 해외 바이어들에게 어떤 변명조차 할 수 없었다. 공포에 사로잡힌 현지인들이 서둘러 짐을 싸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베트남 정부는 신규채용의 전제 조건으로 '백신 접종'만을 막무가내로 외쳤다. 중앙정부마저 백신이 없어 쩔쩔매던 시절, 외국 기업들이 백신을 개별적으로 들여올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베트남, 우린 너희를 알아" 예측 그리고 변환

남부 진출 30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 대표 기업들은 전략적으로 대처했다. 이들은 지난해 2~3월 박닌 등 북부 지역 코로나19 확산 당시 베트남이 예고 없이 기업들을 봉쇄한 모습을 유심히 봐 둔 터였다. "언제가 되더라도, 방역 역량이 부족한 베트남은 성급히 결정을 내릴 것이다." 경험에 기반한 확신이 차올랐다.

가장 먼저 움직인 기업은 효성 베트남법인이었다. 효성은 지난해 6월 남부의 코로나19 확산 상황이 심상치 않자, 봉쇄령이 내려지기 보름 전 사업을 철수한 인근 A기업 부지를 미리 확보했다. 기습적으로 봉쇄령이 떨어지더라도 직원들이 바로 생활할 수 있도록 텐트와 매트리스 등도 구매했다. 덕분에 효성은 봉쇄령 발동에도 7,000명의 직원 중 5,500명을 붙잡을 수 있었고, 봉쇄 기간 동안 100% 생산라인을 유지했다. 24시간 가동해야 하는 화학섬유 생산 설비 시설은 한 번 멈추면 피해 규모를 추산하기조차 어렵다. 전략적 대응이 최악의 사태를 막은 셈이다.

한국기업은 봉쇄 기간 백신 수급도 한 박자 빨리 진행했다. 남부 기업 간 백신 확보 경쟁이 불붙기 전인 지난해 6월, CJ 베트남법인은 지방정부를 적극 설득해 백신을 가장 먼저 확보했다. "CJ의 현지 주력 사업인 물류와 식품 생산까지 멈추면, 봉쇄 시 베트남 경제도 큰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압박과 그동안 현지 의료진 등에 지원을 이어온 진정성이 맺은 결실이었다. 백신의 힘은 상당했다. 실제로 봉쇄 초기 CJ 직원 93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으나 일주일 만에 완치됐고, 생산시설 또한 재가동됐다.

한국기업은 시장 변화에도 능동적으로 대응했다. 남부 중밀도섬유판(MDF) 판매 1위 기업인 동화VRG 법인의 경우, 봉쇄 전 매출의 95%를 차지하던 내수 판매망이 붕괴되자 즉시 해외수출로 방향을 틀었다. 만약에 대비해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과 판매망 확대를 논의해 왔던 것이 호재였다. 경쟁 기업들은 원재료를 못 구해 생산조차 못했지만, 동화VRG는 6개월치 생산 가능 물량을 확보해둔 상황이었다. 이성영 동화VRG 법인장은 "공장에서 3시간 떨어진 붕따우항을 통해 MDF를 해외에 판매할 수 없었다면 봉쇄 기간을 절대 버텨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반격의 서막, 키워드는 '공격 경영'

호찌민과 인근 동나이ㆍ빈즈엉성은 지난해 10월 18일, 빈푸억성 등 외곽 남부 도시는 올해 1월 21일 기업 봉쇄령이 풀렸다. 최소 3개월, 길게는 반년을 공장 안에만 갇혀 지낸 셈이다.

고난의 시간을 예측하고 기민하게 움직였지만 한국기업의 출혈은 컸다. 갇혀 있는 젊은 직원들을 위해 샤워 시설과 화장실을 짓고 세끼 식사에 특별 수당까지 지급했다. 여기에 공장 가동 조건인 '전 직원 정기 유전자증폭(PCR) 검사' 비용 역시 자체 부담해야 했다. 지난 2007년 남부에 진출한 B기업 법인장은 "함께 감금된 500명의 현지인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매달 3억 원을 추가 지출했다"며 "당시 모든 한국기업들은 '당장 적자가 나더라도, 기존 사업 틀만 유지하면 봉쇄 해제 시 가장 먼저 치고 나갈 수 있다'는 의지 하나로 버텼다"고 말했다.

긴 시간을 견딘 한국기업은 '공격 경영'을 첫 카드로 뽑아 들었다. 현지 경쟁 기업들이 생산망 정상화에 몰두하는 동안, 버텼던 힘을 바탕으로 시장을 먼저 장악하는 전략이다. 우선 CJ는 봉쇄 기간 동안 꾸준히 증축해 온 쌀가공공장(롱안성) 등을 가동해 코로나19 봉쇄 기간에 폭발적으로 늘어난 가공식품 수요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남부의 한국 식품기업들은 봉쇄가 풀린 10월 단숨에 그동안의 손실을 만회하고 3개월째 순이익을 쌓고 있다.

화학과 목재 산업도 뛰기 시작했다. 남부의 한국 화학섬유 기업들은 지난해 스판덱스 국제가격 상승과 공장 정상 가동으로 매출 상승세를 이어갔다. 목재 기업군 역시 봉쇄가 풀리기 시작한 지난해 10월에는 60%, 이달 들어선 봉쇄 직전 수준으로 매출을 회복한 상태다. 자금 여력이 있는 양 기업군은 올해 중부 꽝남성(효성)과 남부 빈푸억성(동화)을 중심으로 신규 생산라인 증설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이 밖에도 남부의 건설ㆍ전자조립ㆍ물류 기업들도 지난해 연말을 전후로 대부분 적자를 청산하고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김관묵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ㆍKOTRA) 호찌민 무역관장은 "경제 손실이 컸던 베트남 정부가 최근 외국기업에 문호를 더 개방하는 등 ‘국가 리스크’ 관리에 돌입했다"며 "기존 진출 기업을 포함해 신규투자 검토 회사들도 현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악착같이 버텨 낸 시간들은 결국 반격의 발판이 됐다. 위기 뒤에 기회가 따라오는 건, 베트남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호찌민ㆍ동나이ㆍ빈푸억성= 정재호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