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대한통운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의 갈등이 길어질 조짐이다. 노조가 이달 10일 본사를 점거한 지 닷새째, 작년 12월 28일 돌입한 파업은 49일째다.
양측 갈등의 핵심은 택배 요금 인상분 배분 문제다. 노조는 애초 약속과 달리 회사가 수익 대부분을 챙겼다고 주장한다. 회사는 투자비를 고려한 정당한 배분이며, 본사 점거를 이유로 경찰 고소까지 강행했다. 양쪽 다 한치도 물러서지 않으면서 강대강 대치 장기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14일 택배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CJ대한통운 택배요금은 1분기 대비 227원 올랐다. 올해 100원이 더 올랐기 때문에 총 요금 인상액은 327원인데, 이 중 노동자 처우 개선에 사용된 금액은 76원뿐이라는 게 노조 주장이다.
앞서 택배기사 과로사 방지를 위해 택배사, 영업점, 과로사대책위, 정부 등이 참여한 사회적 합의기구는 지난해 '별도의 분류 인력을 위해 택배 원가를 개당 170원 인상할 수 있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분류 업무가 과로로 이어지기 때문에 노조는 이 문장을 '인상으로 얻은 수익을 모두 노동자 처우 개선에 써야 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날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CJ대한통운은 인상분 327원 중 240원을 자신들 이윤으로 가져갔다"며 "노동자 목숨 값으로 인상된 금액 대부분을 이윤으로 가져가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밝혔다.
작년 4분기 CJ대한통운이 사상 최고 분기 실적인 영업이익 670억 원을 올린 것도 오른 택배단가를 거의 다 회사가 가져간 결과라는 논리다. 이들은 회사가 제대로 된 계산표를 들고 대화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CJ대한통운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회사는 연일 노조의 점거를 규탄하는 입장문을 내놓고 있다. 점거 과정에서 유리문이 깨지는 등 충돌이 벌어지자 회사는 재물손괴, 건조물 침입, 영업 방해 혐의로 택배노조를 고소했다. "인상분 50%가 이미 택배기사 수수료로 들어갔고, 분류 업무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자동화 시스템 등 투자비도 들어갔기 때문에 단순히 계산할 문제는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노조가 주장한 인상분 수치도 잘못됐다는 주장이다. 실적 공시자료에 나온 수치는 택배 운송 배송가격이 아니라 포장비, 창고 대여비 등을 모두 합친 뒤 물동량으로 나눈 값이라는 게 회사 설명이다. 대화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도 "대리점 노조인데 대리점이 아닌 본사와 대화하자는 건 교섭을 하자는 게 된다"며 "교섭 시행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라 지금 교섭을 하면 하도급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미 명분을 잃은 기싸움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CJ대한통운이 점유율 50%로 물량이 워낙 많다 보니 타사보다 자동화 설비 투자를 일찍 집행해 계산법이나 해석이 약간 달라질 수도 있는 건 맞다"면서도 "1등 업체와 노조 간 갈등이라, 서로 길들이려고 신경전을 펼치는 걸로 보는 시각도 있다"고 말했다.
노조는 대화 자리가 마련될 때까지 '끝장투쟁'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일단 15일부터 조합원들이 상경해 서울 도심에서 집회를 연다. 진 위원장은 "기한이 정해진 상경투쟁이 아니라 끝날 때까지 절대 자발적으로 내려가지 않는다는 무기한 투쟁"이라고 강조했다.
이달 21일에는 우체국, 롯데, 한진, 로젠택배 조합원의 하루 경고 파업과 전국택배노조 조합원 7,000명이 참여하는 택배 노동자대회가 동시에 열린다. 21일 이후에도 CJ대한통운이 대화를 거부한다면 다른 택배사를 포함한 전체 파업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한편 경찰은 이번 사안을 노사 문제로 보고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최관호 서울경찰청장은 이날 정례간담회에서 "노조가 자진 퇴거하고 노사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사측이 고소한 내용은 수사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