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해외에서 전쟁, 정치·사회 불안, 자연재해가 임박하거나 발생하면 자국민을 소개(疏開)하는 ‘비전투원 후송작전(NEO)’을 가동한다. 작전은 한국전쟁 때 처음 이뤄졌고, 가장 최근은 2011년 동일본 지진사태 때였다. 주한 미 8군 홈페이지에 NEO 내용이 소개될 정도로 비밀도 아니다. 주한미군은 그 훈련인 ‘포커스트 패시지’를 연례적으로 실시하고 있는데 대상자들을 집결지로 이동시켜 안전지역이나 본국으로 대피시키는 방식이다.
□ 해당국가에 미국의 자국민 대피 조치는 위험이 임박한 강력한 신호다. 1994년 6월 김영삼 대통령이 북폭 위기를 체감한 것도 미국인 철수 준비였다. 언론인 출신 오인환 전 장관이 쓴 ‘김영삼 재평가’를 보면, 당시 레이니 미 대사는 기자회견을 열어 주한미군 가족, 민간인의 서울 철수를 밝힐 예정이었다. 보고를 받고 깜짝 놀란 YS는 청와대로 그를 불러 ‘내가 있는 한 전쟁은 절대 안 되고 미국인 소개도 안 된다’고 경고해 회견을 연기시켰고, 이후 클린턴 대통령과 담판통화를 하게 된다.
□ 2017년 12월 북핵 미사일 사태 때도 미군 가족 철수 문제로 위기가 고조된 적이 있다. 밥 우드워드는 저서 ‘공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트윗하는 방안을 참모진에게 제안했다고 소개했다. 북한이 즉각적인 대북 공격신호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해 트윗은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일각에선 주한미군 라디오방송(AFN)에서 빙 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흘러나오면 위기 징후라는 주장도 한다. 1975년 베트남 사이공 철수신호가 이 노래였다는 것인데 통신수단이 다양한 지금은 유효하지 않은 주장이다.
□ 바이든 대통령이 10일 우크라이나 체류 자국민에게 당장 떠나라고 경고했다. 대사관 직원, 외교관 대부분에게도 철수 명령이 내려졌다. 미군 소개작전이 어려우니 알아서 사전 대피하라는 것인데 NEO 매뉴얼과는 다른 조치다. 위기감을 끌어올리려는 외교적 의도를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 침공이 임박하지 않았다”며 “패닉은 적들의 가장 좋은 친구”라며 서운해했다. 그렇다면 젤렌스키는 우방외교에도 무능을 드러낸 셈인데 그 대가는 국민들이 짊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