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범죄자에게 형사처벌을 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겁니다." "소년이 교도소를 갔다오면 사회에 적응할 수 있겠습니까."
'촉법소년'으로 불리는 형사미성년자(만 10~14세) 기준 연령을 낮추는 문제를 두고 국회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2일 개최한 정책토론회에서였다. 이날 행사는 '시민정책배심제' 형식으로 열렸다. 전문가들의 정책 제안을 넘어, 시민 배심원들이 각 정책안을 평가해 순위를 매기는 작업까지 진행됐다.
'촉법소년, 교화와 처벌 사이'를 주제로 열린 이날 회의는 이탄희 의원실이 지난 10일(경력단절 여성 문제)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한 시민정책배심회의다. 의원실에 따르면 시민정책배심원제는 신고리원전 5·6호기 공사 중단 여부를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채택됐던 시민배심원제를 차용한 것으로, 시민들이 정책 평가와 대안 마련에 핵심 역할을 하도록 설계했다. 이탄희 의원은 "시민이 정치인, 전문가와 함께 대안을 모색하고 숙의가 끝난 사항은 지체 없이 시행하는 제도"라며 "시민이 원하는 의제를 다룰 수 있고 땜질식 처방도 보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 3명은 형사미성년자 연령 하향을 두고 각자 뚜렷이 구분되는 안을 내놨다. 현행 형법 및 소년법상 만 14세 미만은 형사상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되지 않는다. 대신 최대 2년의 보호처분을 받는데 만 10세 미만이면 보호처분도 받지 않는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강력범죄에 한해 형사미성년자 연령 상한을 최소 만 13세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승 위원은 △촉법소년 연령 기준이 정해진 1953년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신체적 성장이 이루어졌고 △2020년 촉법소년 소년부 송치 현황 건수가 2016년 대비 1.5배 늘어났고 △2020년 미성년자 보호처분 사례 중 만 12세가 711명인 반면 만 13세는 2,449명이라는 통계를 근거로 내세웠다.
한영선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전 서울소년원장)는 형사처벌로는 촉법소년 강력범죄를 막아낼 수 없다며 '회복적 사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한 교수는 "살인을 저지른 촉법소년에게 징역 3년형을 부과한다면 출소 이후 사회에 적응할 수 있겠냐"며 "소년법원에 회복적 솔루션 위원회를 설치해 전문가들이 피해자의 실질적 회복을 돕고, 가해자도 소년원에서 진심으로 반성할 수 있는 체계를 고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종호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촉법소년 연령 하향에 공감하면서도 시설 확충 문제가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짚었다. 천 부장판사는 "소년교도소가 전국에 1개밖에 없기 때문에 소년범들이 한데 모여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가능성이 있다"며 "연령대별 소년교도소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온·오프라인으로 참석한 시민 배심원 90여 명은 10여 분간 배심원단 토의를 거쳐 전문가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냈다. 배심원 우모씨가 "성폭력 같은 중범죄에 한해서는 회복적 정의 실현이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하자, 한 교수는 "피해자들이 가해자의 지배력에서 벗어난 사례가 다수 있다"고 답했다. "'촉법소년이 처벌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학습하기 때문에 범죄가 늘어난다'는 인식을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도 나왔다. 승 위원은 "우리 때는 경찰서에 가는 것 자체를 두려워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있다"고 동조했다.
배심원단은 유튜브 시청자와 함께 3개 정책안 가운데 가장 선호하는 안을 골라 투표했다. 승 위원이 투표자 170명 가운데 91표를 받아 1위를 차지했다. 한 교수는 41표, 천 부장판사는 38표를 각각 받았다. 절대평가 성격의 총점투표도 이뤄졌다. 투표자가 각 정책안을 3등급(5점, 3점, 1점)으로 평가해 평균 점수를 내는 방식이었는데 승 위원이 4점, 다른 두 사람은 3점대를 받았다. 이탄희 의원은 "모든 대안에 대한 시민의 동의 수준이 높다는 의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