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핑 위반' 발리예바... 동정론 vs 원칙론 팽팽

입력
2022.02.12 09:24
동정론 “어른들이 망쳤다”
원칙론 "안타깝지만 자격 정지해야"

금지 약물을 복용한 것으로 드러난 피겨 스케이팅 카밀라 발리예바(16ㆍ러시아올림픽위원회)에 대해 동정론이 확산하고 있다. 미성년자인 발리예바의 도핑 샘플에서 불법 약물이 검출된 사실보다, 상황을 이 지경으로 몰고 간 발리예바 주변인들이 문제라는 것이다.

로이터 통신은 12일 “발리예바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많은 사람은 그가 어떻게 금지 약물을 접하게 됐는지에 크게 분노하고 있다. 발리예바 주변의 코치, 의사, 관계자들을 더욱 비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1984사라예보, 1988캘거리올림픽에서 2회 연속 피겨 여자 싱글을 제패한 카타리나 비트(57ㆍ독일)도 어른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트는 “부끄러운 일이다. 이번 사건에 책임 있는 어른들은 모두 영원히 스포츠에서 추방당해야 한다”며 “어른들이 알고도 발리예바에게 이런 일을 했다면 비인간적”이라고 비판했다. 2018 평창올림픽 피겨 단체전 동메달리스트인 애덤 리펀(33ㆍ미국)도 “이 모든 상황에 가슴이 찢어진다”며 “발리예바 주변의 어른들이 그를 망쳤다. 이런 끔찍한 상황으로 발리예바를 몰아간 이들을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의 유력한 우승 후보인 발리예바는 지난해 12월 러시아피겨선수권대회 때 제출한 도핑 샘플에서 불법 약물인 트리메타지딘이 검출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1일 발리예바의 금지 약물 복용을 공식 발표했다. 이어 발리예바에게 잠정 자격 정지 처분을 내렸다가 이를 철회해 계속 올림픽에서 뛸 수 있도록 길을 터준 러시아반도핑기구(RUSADA)의 결정을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했다. CAS도 “IOC와 세계반도핑기구(WADA)의 항소 신청을 각각 받았다”면서 “곧 패널을 선정해 청문 절차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피겨 여자 싱글 경기는 15일 시작한다. 그래서 15일 전에 CAS의 판결이 나와야 한다. CAS의 판결에 따라 발리예바 등 ROC 선수들이 팀 피겨 단체전에서 획득한 금메달의 박탈 여부도 결정된다.

“어쩔 수 없지만 발리예바를 징계해야 한다”는 원칙론도 만만치 않다. 로이터 통신이 소개한 ‘프랜’이라는 트위터 사용자는 “발리예바는 희생양이지만, 그의 샘플에서 금지 약물인 트리메타지딘이 검출된 사실을 모두가 안다”며 “발리예바를 절대 경기에 출전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미국 일간지 USA 투데이도 ‘발리예바는 반드시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아야 한다. 그렇게 안 된다면 올림픽은 영원히 더럽혀질 것’이라는 기사로 강력한 처벌을 촉구했다. 금지 약물 사용은 스포츠의 최대 가치인 정직, 공정, 투명성을 해치는 최악의 범죄 중 하나로 인식되는 만큼 다른 사례와 마찬가지로 발리예바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벌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발리예바는 피겨사를 새로 쓸 세계의 보물이지만, 러시아는 ‘도핑 국가’로 다시한번 낙인이 찍히게 됐다. 러시아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2020 도쿄 하계올림픽에 이어 이번 대회까지 3회 연속 자국명을 쓰지 못하고 ROC 또는 러시아출신올림픽선수(OAR)라는 명칭으로 출전한 까닭은 국가 차원의 조직적인 도핑 조작이 들통났기 때문이다.

한편, 발리예바의 운명을 결정할 스포츠중재재판소(CAS) 패널(중재위원)에 러시아 출신 인사는 없다. 도핑 등 문제로 분쟁이 벌어지면 최후 판결을 하는 CAS는 스위스 로잔에 본부를 뒀다. 다만, 올림픽 같은 메이저 종합대회에선 개최지에 임시 사무실을 운영한다. 현장 분쟁을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다. 현재 CAS는 베이징의 한 호텔에 임시 사무실을 차렸다.

위원장인 마이클 레너드는 미국 출신 변호사다. 이어 2명의 공동 위원장이 있는데, 각각 여성 빙속 선수(슬로베니아), 여성 스키 선수(스위스) 출신이다. 중재 위원은 9명인데, 국적은 중국 미국 호주 슬로베니아 파라과이 덴마크 이탈리아 프랑스(2명)다. 발리예바의 여자 피겨 싱글(15일부터) 출전 여부는 중재위원 6명의 비공개 회의에서 결정된다. 경기 시작 전에는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강주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