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마세라티(Maserati)’는 자신들의 ‘푸른 심장’이 아닌 ‘페라리(Ferrari)’의 붉은색을 품은 V8 엔진을 품은 차량을 선보였다.
브랜드의 퍼포먼스 SUV, ‘르반떼(Levante)’의 하이엔드 사양이라 할 수 있는 ‘르반떼 트로페오’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거대한 체격의 SUV는 590마력의 심장을 통해 ‘도로 위를 지배하는 폭군’으로 거듭났고 ‘소유자’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마세라티는 새로운 결정을 했다. 트로페오를 단순히 ‘르반떼’에 한정하는 게 아니라 ‘트로페오 컬렉션(Trofeo Collection)’를 통해 기블리와 콰트로포르테에도 ‘트로페오’ 사양을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워낙 강력한 퍼포먼스로 이목을 끌었던 ‘르반떼 트로페오’에 매료되었던 만큼 오늘의 주인공, 기블리 트로페오(Ghibli Trofeo) 역시 기대될 수 밖에 없었다.
580마력의 붉은 심장
기블리 트로페오의 핵심은 단연 붉은 심장에 있다. 실제 기블리 트로페오의 보닛을 들어 올리면 580마력과 74.44kg.m의 토크를 제시하는 붉은색의 V8 3.8L 가솔린 트윈 터보 엔진이 자리한다. 누가 보더라도 ‘페라리의 엔진’임을 엿볼 수 있다.
엔진이 제시하는 강력한 출력을 대응하는 건 ‘스포츠카’와는 다소 거리가 먼 토크 컨버터 방식의 8단 자동 변속기다. 대신 순수한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강조하듯 M-LSD를 적용한 후륜구동 레이아웃이 더해졌다.
참고로 기존의 르반떼 트로페오를 알고 있거나 경험한 이라면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아무래도 기존의 트로페오가 590마력이었던 만큼 10마력 가량 낮아진 현재의 출력이 조금 아쉽게 느껴지지만 배출가스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브랜드의 노력인 만큼 ‘수용’할 수 있다.
어쨌든 이러한 구성을 통해 기블리 트로페오는 정지 상태에서 단 4.3초 만에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며 최고 속도 역시 326km/h에 이르는 ‘하이엔드 스포츠카’의 가치를 선명히 드러낸다.
드라이빙의 의지를 드러내다
강력한 심장을 품은 만큼 기블리 하이브리드의 외형과 실내에는 ‘드라이빙의 의지’가 대서 담겨 있다. 실제 외형에서는 차량의 기본적인 체격인 일반적인 기블리와 동일하지만 차체 곳곳에 카본파이버 패널, 그리고 트로페오 컬렉션의 의지를 드러내는 ‘붉은색 디테일’을 대거 더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역시 카본파이버 패널의 차체 디테일에 있다. 여기에 보닛 역시 새롭게 다듬어졌고, 차체에 자리한 사이드 밴트, 레터링 등에 붉은색이 더해졌다. 더불어 C 필러의 마세라티 엠블럼에도 ‘붉은색 디테일’이 반영되었다.
물론 강력한 출력의 발현, 그리고 마세라티 고유의 사운드를 위한 디테일도 더해졌다. 실제 기블리 트로페오의 후면에는 큼직한 트윈 머플러 팁이 양끝에 자리하며, 거대한 리어 디퓨저 또한 적용되어 ‘시각적인 만족감’을 더한다.
실내 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기본적인 구성은 여느 기블리와 다름이 없다. 하지만 카본파이버 패널, 그리고 붉은색 가죽이 대거 적용되어 ‘대담한 퍼포먼스’의 감성을 선명히 드러낸다. 덕분에 일반적인 기블리와 선명한 차이를 명확히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드라이빙에 초점을 맞춘 차량인 만큼 더욱 드라마틱한 스타일의 계기판이나 스티어링 휠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일반적인 기블리의 부품’을 그대로인 점은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반대로 ‘마세라티다운 선택’이라 생각되었다.
순수한 ‘힘’의 갈증, 기블리 트로페오
기블리 트로페오의 시트에 몸을 맡긴 순간 떠오른 단어는 바로 ‘차경(借景)’이었다.
대담하고 강렬한, 그리고 퍼포먼스에 대한 기대감을 강조한 구성이 시선을 집중시킬 것 같지만 막상 기블리 트로페오의 운전자는 ‘창 밖의 풍경’에 집중하게 된다. 화려하지만 화려하지 않고, 시선을 끌지만 ‘시선을 뺏기지 않는’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이윽고 시동을 걸면 강력한 심장이 존재감을 드러내듯 제법 강렬한 사운드가 캐빈을 채운다. 단순히 성능만 본다면 폭발적인 사운드가 터져나올 것 같지만 생각보다 ‘조용한 편’이라 꽤나 인상적인 부분이다.
엑셀러레이터 페달을 짓이기면 예상하지 못한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영하로 떨어진 차가운 기온, 그리고 이를 머금은 아스팔트 위의 기블리 트로페오의 타이어가 미끄러지는 것이다.
누구라도 순간 당황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580마력과 74.44kg.m의 토크와 더불어 순수한 드라이빙의 갈증을 품은 후륜구동 레이아웃의 구조를 감안한다면 너무나 당연한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에 혹자는 AWD의 안정감, 우수한 가속력을 원할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취향을 밝힌다면 ‘기블리 트로페오의 구성’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분명 누군가에게는 불안감을 줄 수 있는 구성이지만 누구보다 ‘강력한 힘’을 앞세운 ‘날 것 그대로의 드라이빙’은 말 그대로 ‘치명적인 매력’이다.
특히 최근의 차량들이 과도할 정도로 정교해지고 다루기 쉽게 변하고 있는 가운데 이렇게 후륜 부분을 흔들려 달릴 수 있는 차량은 반갑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드라이빙 모드를 스포츠, 그리고 코르사 모드로 변경한다면 더욱 대담하고 폭발적인 움직임을 누릴 수 있다. 보다 직관적이고 기민한, 그리고 과격할 정도로 달리는 그 모습은 운전자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워낙 강력한 성능인 만큼 절대 공공도로에서는 ‘코르사 모드’를 활성화하지 않길 권한다.
그럼에도 다듬어진 기블리 트로페오
순수한 힘의 표현, 날것 그대로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와중에도 기블리 트로페오는 한층 발전하고 또 다듬어진 ‘매력’을 제시한다.
8단 자동 변속기만 하더라도 일상은 물론 스포츠 주행, 그리고 트랙 주행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조율 능력을 갖췄다. 덕분에 출력 전개의 정도만 익숙해진다면 언제든 편하게 차량을 다룰 수 있는 확신을 얻는다.
게다가 강력한 성능만큼 ‘출력을 제어하는 것’에도 공을 들였다. 실제 기블리 트로페오는 폭발적인 성능을 단 번에 제압할 수 있도록 보다 강력한 브레이크 시스템을 더했다. 덕분에 운전자는 언제든 ‘트로페오의 광기’를 억제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최근의 마세라티가 가장 돋보이는 이유는 ‘정갈함’을 더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의 모든 마세라티들은 서스펜션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으며 주행 전반의 만족감을 높였다.
그리고 이는 ‘강력한 퍼포먼스’로 무장한 기블리 하이브리드에도 자리한다. 분명 드라이빙에 집중한, 폭발적인 모습이지만 전반적인 일상에서의 승차감이 개선된 모습이다. 실제 깔끔히 다듬어진 도로 위는 물론이고 일상 대부분의 승차감이 개선된 걸 느낄 수 있다.
이외에도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개선되며 각종 안전, 편의사양 등을 손쉽게 누릴 수 있다는 점 역시 분명한 ‘플러스 요인’일 것이다.
순수함에 대한 대답, 기블리 트로페오
마세라티의 트로페오 컬렉션은 분명한 ‘성과’를 제시한다.
물론 1억 8,050만원이라는 가격은 분명 부담스럽고, 또 다른 선택지의 존재감을 도드라지게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기블리 트로페오의 매력, 가치를 고려한다면 충분히 ‘경쟁력’ 그리고 ‘선택의 의미’는 존재한다.
촬영협조: FM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