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역사 새로 쓴 '톱5' 차준환 "오늘 경기로 희망을 봤어요"

입력
2022.02.10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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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4회전 점프서 넘어진 뒤 호흡 되찾아 완벽 연기
평창 15위에서 베이징 5위로 자기기록 경신
"세게 넘어져서 당황했지만 곧 돌아와서 만족"
"저라는 선수 보여준 무대, 앞으로 기대된다"

차준환(21)이 한국 남자 피겨스케이팅의 역사를 새로 썼다. 첫 번째 4회전 점프에서 크게 넘어지는 실수를 하고도 완벽하게 호흡을 되찾는 노련함으로 5위를 차지했다. 한국 남자 싱글 선수가 올림픽에서 5위 안에 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 최고 기록은 차준환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기록한 15위다.

차준환은 "오늘의 경기가 저한텐 좀 희망적이었다"며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경기로 마무리하지 않았나 싶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또 "올림픽이라는 경험은 선수들에게 정말 소중하다"며 "다음 올림픽에는 더 많은 한국 선수들이 함께 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차준환은 10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프리프로그램에서 182.87점을 받았다. 앞서 쇼트프로그램에서 기술점수(TES) 54.30점, 예술점수(PCS) 45.21점, 총점 99.51점을 기록해 29명의 출전 선수 중 전체 4위를 기록했던 차준환은 쇼트와 프리를 합쳐 282.38점을 기록하며 전체 5위를 차지했다. 금메달은 네이선 첸(미국·332.60점)이 차지했고 가기야마 유마(310.05점), 우노 쇼마(293.00점), 하뉴 유즈루(283.21점·이상 일본)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오페라 '투란도트'에 맞춰 프리프로그램을 준비한 차준환은 올림픽이라는 무게감에 긴장한 듯 첫 점프인 쿼드러플 토루프(4회전 점프)에서 크게 넘어졌다. 배와 가슴까지 얼음에 닿는, 부상이 우려될 정도의 추락이었다. 하지만 차준환은 호흡을 놓치지 않았다. 곧장 다시 일어나 리듬을 찾았다. 언제 넘어졌냐는 듯 4회전 점프(쿼드러플 살코)를 날아올랐고, 트리플 러츠-트리플 루프 콤비네이션과 플라잉 카멜 스핀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며 자신의 페이스를 되찾았다.

이후의 무대는 완벽했다. 차준환은 온몸으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스텝과 스핀에도 완급이 살아 있었다. 트리플 악셀-더블 토루프 콤비네이션과 트리플 악셀까지 음악에 맞춰 이어가며 올림픽을 만끽했다. 마지막 풋 싯 스핀과 풋 콤비네이션 스핀으로 곡선을 뽐내며 연기를 마무리한 차준환은 만족한 듯 방긋 웃어보였다. 깊게 허리를 숙여 관중들에게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만 무대를 빠져나올 때에는 첫 점프 실수가 생각난 듯 아쉬움에 고개를 흔들었다.

경기가 끝난 뒤 만난 차준환의 얼굴에는 만족감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그는 "오늘로서 이번 베이징올림픽 저의 경기를 마치게 됐다. 쇼트와 프리 모두 개인적으로는 만족하는 경기를 만들어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오늘 첫 점프에서 아쉬운, 큰 데미지가 오는 실수가 있었다"며 머리를 만졌다.

그래도 차준환은 "(무대를 마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잘 싸운 것 같다'였다"고 했다. 그는 "생각보다 너무 세게 넘어져서 조금 당황스러운 느낌도 없지 않았는데, 빨리 잊어버리고 곧바로 정상적인 라인으로 돌아왔다. 앞의 실수가 잊혀지게끔 남은 요소를 수행해서 잘 이어나가려고 했다. 그런 점에서는 만족한다"고 덧붙였다.

뒤에서 네 번째로 프리프로그램 연기를 펼친 차준환은 후발 주자들이 모두 연기하기 전까지 메달권에 머물기도 했다. 그는 "사실 (메달에 대한) 기대보다는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세웠던 제 목표는 어느 정도 다 이뤄서 만족했다"고 말했다. 그는 "퍼스널 베스트(개인 신기록)가 첫 번째 목표였고 다음은 톱10 안에 드는 거였는데 그 이상으로 이루게 됐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저라는 선수를 좀 더 보여준 그런 경기가 된 거 같다"고 말했다.

차준환은 '4년 뒤 메달 도전' 등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아직 먼 미래의 일"이라고 쑥스러워하며 구체적인 대답을 피했다. 그래도 "계속 앞으로 더 싸우고 발전하면서 강한 선수로 성장해나가고 싶다"며 단단한 각오를 말했다. 다른 동료를 위해 올림픽 티켓을 더 많이 따내고 싶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자신을 성장시킨 건 평창이라고 했다. 차준환은 "평창 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컨트롤하는 법을 많이 배웠다. 오늘 좋은 결과를 만드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평창을 경험하고 난 뒤 올림픽이라는 경험이 선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많이 느꼈다. 다음 올림픽까지 열심히 해서 다른 선수들과 함께 더 많은 티켓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팬들의 응원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차준환은 "정말 많은 분들이 저를 응원해줬기 때문에 계속해서 제가 버티고 싸우고 올림픽을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다음 주 경기를 앞둔 유영(18)과 김예림(19)에게는 "올림픽은 소중한 시간이다. 순간순간 즐길 수 있는 만족할 수 있는 경기를 만들어냈으면 좋겠다"고 응원의 말을 전했다.

베이징 최동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