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간 야권 후보 단일화 시계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정치권에서 1차 데드라인으로 꼽히는 대선후보 등록일(13, 14일)이 다가오면서다. 협상보다는 후보 간 담판으로 결론짓겠다는 윤 후보는 상대적으로 다소 느긋한 모습이다. 연일 '완주' 의지를 강조하는 안 후보를 향해 단일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실제 카드를 꺼내 들지 여부에는 말을 아끼고 있다.
윤 후보는 9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 협상에 대해 "서로 신뢰하고 정권 교체라는 방향이 맞으면 단 10분 만에도 끝낼 수 있는 것"이라며 "물밑에서 미주알고주알 따지는 지난한 협상이라면 처음부터 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7일 본보 인터뷰에서 "단일화를 배제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에서 좀 더 나아간 발언이다. 윤 후보가 단일화 과정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안 후보는 즉각 "(단일화는) 10분 만에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며 "일방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우려한다"고 윤 후보를 비판했다. 다만 '윤 후보가 만나자는 연락이 있으면 만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때 생각해보겠다"며 여지를 두었다. 아직까지 양측은 단일화 논의와 관련해 "서로 연락을 주고받지 않고 있다"며 선을 긋고 있다.
윤 후보 측은 단일화 논의 과정에서의 '역풍'을 우려한다. 윤 후보가 원하는 후보 간 담판을 성사시키기 위해선 상대가 수용할 수 있는 '양보 조건'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야권에서는 안 후보에게 내각 인사권과 국정 운영권을 보장하는 책임총리를 제안하고, 정권교체 후 연합정부를 구성하는 'DJP(김대중·김종필) 연합' 방식이 거론된다. 그 과정에서 대선과 함께 열리는 재·보궐선거 지역 공천권과 6월 지방선거 공천권도 논의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
만약 윤 후보가 제시하는 조건이 구체화된다면 국민의힘 내에서 권력다툼이 불거질 수 있다. 공천권을 갖고 있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윤 후보와 안 후보의 단일화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이날 YTN 라디오에 출연해 안 후보의 중도하차론에 힘을 실었다. 그는 오는 15일 공식 선거운동 시작일까지 전국에 정당 사무소 마련과 유세차 운영을 위한 100억~200억 원의 비용을 거론하며 "(안 후보에게) 그런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 선거를 완주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만약 단일화 조건을 두고 윤 후보와 이 대표가 충돌한다면, 윤 후보와 안 후보 사이가 멀어질 수 있다. 윤 후보 측에서 "단일화 후 화학적 결합에 실패하면 오히려 마이너스"라는 우려 섞인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지지층도 결집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 후보의 각종 도덕성 논란으로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는 '샤이(shy) 이재명' 세력이 있다는 주장이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이 후보를 선택할 샤이 진보층이 3~5% 정도는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윤 후보 주변에선 오는 11일 대선후보 2차 TV토론이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윤 후보가 3일 1차 TV토론에서 선방했다는 평가가 많은 만큼 2차 TV토론 이후 여론 추이에 따라 안 후보와의 담판 여부를 결정짓겠다는 것이다. 선대본부 관계자는 "지금은 단일화 논의가 아니라 TV토론에 집중할 시기"라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윤 후보가 11일 TV토론을 성공적으로 마치거나 심각한 지지율 하락에 봉착하지만 않는다면 후보 등록일까지 담판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다수다. 최근 지지율이 주춤하고 있는 안 후보가 보다 다급해질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 후보는 공식 선거운동 개시에 맞춰 유세차량을 계약하는 등 독자적인 선거운동 준비에 돌입했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아름다운 단일화는 모든 퍼즐이 맞아야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쉽지 않은 과정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