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간 46분. 지난 일주일 동안 기자가 하루 평균 휴대폰을 사용한 시간이다. 하루 24시간 중 3분의 1을 휴대폰을 보며 산 셈이다. 이 중 가장 많이 사용한 애플리케이션(앱)은 메신저앱 '카카오톡'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이다. 대략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이 타인 및 세상과 연결돼 있다는 얘기다.
놀라긴커녕 생각보다 적은 수치여서 당황스러웠다. 2년 전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든 이후 일상의 웬만한 것들은 SNS에 자랑하던 터였다. 의식주부터 잡다한 생각과 자잘한 업무까지 모든 것을 공유했다. 기자의 세상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타인의 세상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인스타그램 계정만 5개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 기자가 또 SNS에서 재미있는 콘텐츠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디지털 기기와 사회적 연결에서 완전히 단절되는 공간인 '고독스테이'다. 3시간 동안이나 휴대폰을 멀리하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고독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지난달 10일 오후, '핫플레이스'라 불리는 서울 지하철 망원역에 내려 300m쯤 걸었을까. 골목 주택가 사이에 짙은 초록색 대문이 보였다. '이렇게 사람 많고 '핫'한 곳에서 고독을 즐기라고?' 대문을 열자 현관이 나왔다. 일반 가정집과 다름없어 보이는 작은 공간. 거울에는 미션 종이가 붙어 있는데, 첫 미션부터 당황스러웠다. 모든 디지털 기기를 꺼내어 보관하라는 것. 거울에는 '지금부터 3시간 세상으로부터 로그아웃합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탄성을 질렀다. 눈길을 사로잡는 요소들이 작은 공간 곳곳에 있어서다. '도심 속 템플스테이', '현대인을 위한 사원(祠院)'이라는 말에 걸맞게 시각 청각 후각을 안정시킬 도구들이 놓여 있었다. 심신 안정에 관심이 많아 사원 느낌이 나는 데 큰 거부감이 없었지만, 누구나 같은 느낌을 받을 순 없을 테다. 그래서일까.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만둬도 좋다, 옳고 그름에 대한 생각보다 나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지 더 집중하라"고 미션카드는 안내했다.
벽 한쪽에 놓인 LP판이 눈에 띄었다. 집에 없는 물건이라 생경해 임의로 아무거나 집어 재생했다. 그런데 이 무슨 상황인가. 집는 족족 클래식이 나왔다. '은은한 조명과 향과는 동떨어진 느낌인데? 이걸 어떻게 기사화하지?' 내 마음을 미리 읽은 듯 미션카드는 "순간의 작은 놀라움을 즐기라"고 안내했다. '아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판단을 내려놓지 못했구나.' 이내 눈을 감고 들려오는 음악의 곡조에만 집중했다.
이곳은 '세상으로부터 로그아웃'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면으로 로그인'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 콘셉트에 걸맞게 사색(思索)할 수 있는 도구들이 많았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젠가가 있었다. 질문은 랜덤했지만 생각거리를 끊임없이 던져줬다. '최근에 스스로 새롭게 발견한 모습', '내 몸이 일주일만 더 살 수 있다면 어떻게 보낼 것인가' 등 평소에는 혼자 하지 못할 질문이 나왔다. 신기한 것은 스스로 SNS를 영리하게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지만 '최후의 일주일에 할 일'로 'SNS 삭제'를 적었다는 것.
빈 종이와 만년필은 머릿속을 들여다볼 또 다른 도구. 일명 '글쓰기 명상'이다. 일기를 써볼 수도 있고 시를 써볼 수도 있었으나 기자는 '한 달 후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평소에는 스스로 채찍질하며 전진하는 스타일이지만 이날만큼은 최대한 응원을 보내는 말을 건넸다.
이것저것 시도하다 보니 목이 말라가던 찰나, 수동 커피 그라인더가 있어 원두를 직접 갈아 봤다. 이것 또한 탈(脫)디지털의 재미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직접 원두를 간 커피향을 음미하니 그 또한 사색거리다. '최근에 스스로 새롭게 발견한 모습'에 '생각보다 아날로그를 좋아함'을 추가했다.
당초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아까워 두 시간만 머물려 했으나 주어진 세 시간을 다 썼다. 고요와 적막 속에서 '감각마저 판단하는 나'를 내려놨고, '나도 몰랐던, 아날로그를 즐기는 나'를 발견했다. 여러 깨달음을 얻고 나니 교외로 나가야 하는 템플스테이를 말 그대로 도심 한복판에서 경험한 느낌이었다.
공간 한쪽에는 이곳을 다녀간 이들의 짧은 방명록이 붙어 있었다. 누군가는 "빈 시간은 허무함, 낭비 등과 연결되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않았다. 온전한 나의 시간"이라고 했고, 다른 이는 "소란스럽고 복잡한 도시를 거닐다가 문 하나를 지난 순간부터 전혀 다른 세상에 머문 기분"이라고 남겼다.
지난해 2월 이 공간을 처음 선보인 김지영 고독스테이 대표는 이전에도 공간과 관련된 일을 해왔다. 김 대표는 "문화예술로 지역재생하는 모델에 대한 연구사업을 하고 유휴공간을 활용해 지역 공동체를 되살리는 프로젝트도 진행했다"며 "그러다보니 공간을 단순히 물리적 개념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콘텐츠로 채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원래는 열정 넘치는 배낭여행 애호가였던 김 대표는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을 만나는 게 흥미롭지 않으면서 얕은 무기력을 겪었다"며 "그때 고독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껴 '혼자 고요하게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문제는 휴대폰. "휴대폰을 쥐게 된 이후로는 지금, 여기에 제대로 몰입하기가 너무 힘들게 됐죠. 그래서 '디지털 디톡스'가 건강한 고독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원래는 책도 정말 좋아했는데 휴대폰을 손에 달고 다닌 이후로는 제대로 집중해 독서할 시간이 없어져 스스로에게 자꾸 실망했어요. '어디 날 가둬 두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게 발단이 됐죠."
'나에게 귀를 기울여 보세요.' 김 대표가 처음 공간을 설계할 때 중점을 둔 부분이다. 그는 "요새는 내가 어떻게 잘 살아야 할지 모르겠으니 인플루언서들을 보면서 따라하고 싶어한다"며 "사람들이 자기 안의 이야기를 꼭 찾아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알아냈으면 했다"고 말했다.
이는 고독스테이가 광고를 자주 안 하는 이유와도 연결돼 있다. 김 대표는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이런 걸 얻어 갈 거야'라는 마음으로 오기보다 '그냥 나 자신에게 쉼표 같은 시간을 허락해 준다'는 생각으로 왔으면 한다"고 전했다.
고독스테이의 주 방문객은 2030 여성이다. 고독스테이에는 방명록을 남기는 숨겨진 공간이 있는데 한 방문객은 자를 두고 갔다고 한다. "인생을 90년으로 봤을 때 30㎝자 기준으로 아직 반이 안 되는 14㎝라고, 그 위치에 메모를 붙여 두신 거더라고요. '고독은 자유다. 가장 사랑받아야 할 나를 만나고 갑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긴 메시지를 보내오셨어요. '고독 속에서 나를 만났던 시간 덕분에 나와 다른 사람들과 행복한 소통을 할 수 있어서 감사를 전하고 싶다'고."
고독스테이에는 하루 3시간 또는 1박을 머물 수 있는 옵션이 있다. 3시간으로 정한 이유는 베타 서비스 운영 시절 이용자들에게 원하는 만큼 선택해서 머물 수 있게 했는데 대부분 3시간이 가장 적절하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새로운 공간에서 편안히 자신에게 몰입할 수 있으려면 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면서도 "일상 속에서 부담없이 들를 수 있는 시간이 딱 3시간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일상에서 고독에 빠질 수 있는 팁에 대해선 "공간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향을 피우거나, 차를 평소보다 더 천천히 우리면서 내가 나를 위한 고독의 시간에 들어간다고 상상하는 것을 추천한다"며 "가장 중요한 건 매일의 시간 속에서 내가 나에게 시간을 허락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