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봇'에 난 펑펑 울었다

입력
2022.02.0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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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 나오는 오미크론 확진자 수가 매일매일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계속해서 누군가 격리되거나 아프거나 죽어간다는 뉴스를 정보라는 미명하에 챙겨봐야 한다는 건 참 진저리 처지는 일이다. 그 수에 무뎌져 간다고 충격적이지 않거나 상처받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래선지 요즘 가만히 있다가도 몇 년 전 봤던 EBS 다큐프라임의 '4차 인간'의 편린들에 사로잡히곤 했다. 다큐를 보면서 휴지 곽을 다 비울 정도로 펑펑 울었다. 아버지봇과 로봇 밀그램 실험 때문에!

아버지봇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랑을 계속 느끼고자 했던 아들이 생전에 아버지를 인터뷰하고 열렬히 정리해서 만든 챗봇이다. 아버지봇은 아들이 말을 걸면 아버지의 생전 어투로 답해준다. 아들이 노래를 불러 달라고 하면 녹음했던 아버지의 육성 노래가 나온다. 무언가를 잃었을 때의 감정을 상실감이라고 한다. 영화 굿 윌 헌팅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넌 진정한 상실감이 뭔지 몰라, 왜냐면 그건 타인을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할 때 느끼는 거니까" 이 대사처럼 아마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을 잃고 그들을 나보다 더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로봇 밀그램 실험은 실험자들에게 AI 스피커(기계)와 며칠의 시간을 보내게 한다. 이후 테스트를 하는데 기계가 실험자의 명령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실험자가 기계에 전기 충격(고통)을 단계별로 주도록 한다. 최종적으로는 실험자가 그동안 썼던 기계의 폐기 버튼을 누르게 하며 그때의 반응을 기록했다. 실험에 참여한 사람의 과반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기계의 폐기 버튼을 누르지 못했고 기계의 고통에 동요하거나 눈물을 보였다. 며칠이나마 손이 타 정이 든 AI 스피커를 실험자들은 도깨비처럼 감정적 의인화를 통해 고통과 버려짐에 공감하고 동요했는지도 모른다. 토속귀신 중 하나인 도깨비는 사람의 손때 묻은 물건에 깃들어 동물이나 사람의 형상을 하게 된다고 한다.

누군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코로나19가 주는 공포는 그게 내가 되든, 아끼는 이들이든, 뭉근한 불에 풀어지는 쌀알마냥 나를 비롯한 모두의 자아를 알게 모르게 짓이긴다. 제대로 된 장례식조차 치르기 어려운 요즘, 아버지봇처럼 우리를 기릴 수 있는 무언가를 나를 위해 또 남겨질 이들에게 안겨주는 시도를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포털 사이트에 '부모님 문답, 자식 문답, 가족 문답, 자식 고사, 가족 모의고사, 나의 자서전'이라고 검색하면 만 원 내외의 질의응답 형태로 그 사람을 기록하는 기록형 책을 살 수 있다. 아버지봇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을 더 잘 알고 기억하게 해줄지도 모른다.

필자는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책, '365일 아티스트처럼'을 남기고 싶다. 금덩이를 뚝딱 내어주는 도깨비는 못 돼도 내가 그리워 책을 들여다볼 때면 우스꽝스러운 질문에 답한 수많은 나, 책이 시키는 대로 붙인 일회용 설탕 봉지들, 한글을 갓 뗀 것 같은 내 글씨가 그들을 '피식' 하고 웃게 만드는 도깨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조금만 슬퍼하고 나로 인해 웃으며 일상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모두가 무탈하길 바라지만 그럴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이라면 그 안에서 주고받았던 사랑을 기억하게 해줄 무언가를 움켜쥐고 무던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면 좋겠다.


박소현 패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