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선율과 화성의 조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있다. 그런데 작품, 작곡가, 연주자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면 음악은 좀 더 친근해지고 또 다른 감동을 만들어낸다. 음악에 가사가 붙으면 구체적인 의미가 더해지면서 공감의 깊이가 달라지고, 음악회에서 잘 정제된 해설을 듣게 되면 연주자와 프로그램에 좀 더 집중하게 된다. 순수음악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작은 연결고리, ‘이야기’가 듣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은 명반을 중심으로 감상할 수도 있고 시대와 작곡가, 연주자, 작품의 연대기를 따라가며 감상할 수도 있다. 그리고 개인의 취향과 음악과 이야기가 만나면서 자신만의 플레이리스트를 쌓아갈 수도 있다.
인생 앨범을 꼽으라고 할 때, 마크 민코프스키와 루브르의 음악가들이 연주한 장 필립 라모의 ‘상상교향곡’(une symphonie imaginaire) 앨범을 언급할 때가 있다. 물론 세기의 명반들, 존 엘리엇 가디너의 바흐 '마태수난곡',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멘델스존 교향곡 전곡,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의 모차르트 '레퀴엠' 앨범 등은 지금도 제일 손이 많이 가는 보물 같은 앨범이다. 하지만 각별한 이야기가 쌓인 몇몇 앨범들은 언제 들어도 가슴 뭉클하게 만드는 나만의 애장 음반이다.
라모는 비발디와 같은 시대, 그러니까 ‘교향곡’이라는 포맷이 완성되기 이전 시대를 살다 간 사람이다. 라모는 ‘상상교향곡’을 쓴 적이 없다. 이것은 음악에서 늘 발칙한 생각을 표현해 온 민코프스키가 라모의 오페라 중 기악곡들을 추려내 그럴듯하게 순서를 배열하고 교향곡이라고 명명한 후 ‘상상’이라는 애교 섞인 단어를 덧붙여 만든 앨범의 타이틀인 것이다. 최근에는 테오도르 쿠렌치스와 무지카 에테르나가 라모의 오페라 발췌곡 앨범을 내놓기도 했는데, 클래식 음악계의 이단아로 꼽히는 두 사람은 17세기 라모의 음악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확실하게 보여준다. 물론 바로크 시대 악기의 청량감과 세련된 리듬, 깔끔한 해석과 구성, 오디오파일용으로도 추천할 만큼 음질이 좋은 민코프스키의 앨범이 늘 우선순위다.
그렇게 좋아하던 라모의 음악은 극장에서 첫 홍보업무를 맡았던 2005년, 프랑스 현대무용 프로젝트 그룹 ‘몽탈보-에르뷔’ 무대에서 다시 마주했었다. 현대무용가들이 춤으로 표현한 라모의 음악은 시대나 장르의 경계가 얼마나 멋지게 허물어지고 얼마나 근사하게 융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그리고 2013년, 민코프스키와 루브르의 음악가들 초청 무대를 직접 기획해 한국 무대에 처음으로 ‘상상교향곡’을 선보이게 됐다. 민코프스키를 만났을 때, 처음엔 너무 떨려서 말도 못 꺼냈었다. 그리고 2016년, 이들을 한화클래식 무대를 위해 또 한 번 초청해 서울과 지방 공연까지 다녀왔다. 리허설 때 텅 빈 객석에 앉아 그 맑고 청량한 바로크 악기의 앙상블을 들었을 땐 여기가 천국인가 싶었다. 감사한 것은 낯선 바로크 음악을 기꺼이 좋아하고 진심으로 감격을 표현한 관객들의 반응이었다. 간절함과 애정은 전염되는 것일까. 아니면 오페라 속에서 떼어온 음악이기 때문에 장면을 연상하기 수월해서였을까. 안 그래도 좋은 평가를 받는 앨범이지만, 개인사를 덧붙여 이 음반을 권하면 늘 고맙다는 피드백을 받는다.
클래식 음악은 순수예술, 추상의 예술이다. 현실에서 한 발짝 떨어진 관념, 비유, 상상이 곁들여져야 만끽하게 되는데, 이 부분 때문에 ‘클래식은 어렵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음악에 실제적인 감동과 이야기가 섞이면 음악은 곧바로 즉물적인 형태, 사건과 기억으로 남게 된다. 평소엔 부담스럽던 클래식 음악이 영화 속 한 장면에 스며들게 되면, 그 음악은 어느새 나만의 명곡이 되는 것과 같다.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는 누가 뭐래도 명곡이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명곡으로 꼽게 된 배경에는 1986년의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가 큰 역할을 했다. 이 곡을 들으면서 누군가는 모차르트와 빈 궁정악단의 클라리넷 연주자 안톤 슈타들러를 얘기하고, 누군가는 영화 속 메릴 스트리프와 로버트 레드포드를 얘기할 것이다. 대상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많은 이야기들이 음악에의 몰입감을 높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