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30년만에 부활한 영월 텅스텐 광산... 그런데, 한국 몫은 없다

입력
2022.02.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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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폐광 되살린 자원전쟁]
'외국자본' 알몬티대한중석, 텅스텐 재채굴
국내 시설 없어 전량 해외 제련 후 판매 예정
텅스텐 공급 막힐 땐 '자원주권' 발휘 못해
"경제성 적어도 정부가 투자 나서야"


#. 지난달 25일 강원 영월군 상동광산의 ‘알폰스-D’ 갱구. 헬멧 랜턴에 의지해 지름 약 4m의 칠흑 같은 갱도 400m가량을 걸어 들어가자, 막다른 길에 닿았다. “여기부터 매장돼 있습니다.” 광산 관계자가 광물 식별용 자외선 발생장치(미네랄라이트)를 켜자, 형광색으로 빛나는 물질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난해 중국의 자원 무기화 움직임 이후 공급처 다변화 필요성이 제기된 희소광물, 중석(텅스텐) 덩어리였다.

다시 활기 도는 상동광산

상동광산이 인간의 온기를 느끼는 건 약 30년 만이다. 이곳은 1980년대 중국의 텅스텐 ‘덤핑 공세’로 가격경쟁력을 잃어가다, 1993년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 정책과 맞물려 폐광됐다.

폐광 이후 주민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2020년 말 상동읍 인구는 1,094명까지 쪼그라들었다. 유일한 경제활동이 사실상 멈추며 '지역 소멸' 위기에 처한 이곳 주민들로선 상동광산 부활 움직임이 반갑기 그지없다.

과거 한국은 세계적 텅스텐 수출국이었다. 국영기업 대한중석이 상동광산에서 채굴한 텅스텐은 한때 전체 한국 수출의 70%를 차지하기도 했다. 60, 70년대 이곳에 "돈이 돈다"는 소문에 전국에서 사람이 몰리며 상동읍에만 3만 명 이상 살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중국의 저가 텅스텐 공세에 밀려, 지금 한국은 94%를 중국산 수입(산화텅스텐 기준)에 의존하는 텅스텐 수입국이 됐다.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장기간 방치돼 있던 상동광산을 부활시킨 건 외국 자본이었다. 상동광산 광업권을 캐나다 텅스텐 업체 알몬티가 인수, 지난해 초 상동읍내에 ‘알몬티대한중석’을 설립했다.


캐내도 전량 미국으로… 사라진 '자원 주권'

'자원빈국' 대한민국에서 텅스텐은 거의 유일하게 경쟁력을 갖춘 자원이다. 알몬티대한중석에 따르면, 아직도 상동광산엔 5,800만 톤 넘는 텅스텐이 매장된 것으로 파악된다. 연간 100만 톤씩 캐도, 50년 이상은 걱정 없는 규모다.

한국의 텅스텐은 품질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상동광산에 매장된 텅스텐의 광물 내 함량은 0.44%로 중국산(0.19%), 세계 평균(0.18%)의 두 배가 넘는다.

하지만 상동광산에서 캐는 텅스텐은 안타깝게도 한국의 소유가 아니다. 텅스텐 원석을 캐 전량 해외로 보내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알몬티대한중석에 따르면, 상동광산 재활성화 사업은 본사(알몬티)와 프로젝트 파이낸싱(PF)으로 확보된 해외자본으로만 진행된다.

현재로선 '정광(불순물을 제거해 품위를 높인 광석) 시설' 확충 계획만 갖추고 있다. 향후 채산이 시작되어도 국산 텅스텐은 제조·판매업체인 미국 ‘GTP(Global Tungsten & Powders)’로 보내져 제련(광석에서 금속을 추출하는 과정)을 거쳐 '미국산' 완제품으로 판매된다. 한국 정유업체가 중동산 원유를 들여와 각종 석유제품으로 파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는 지난해 중국산 요소수 사태처럼 만일의 경우, 텅스텐 수입이 막혀 국내 채굴 텅스텐을 사용하려 해도 사실상 우리에게 '텅스텐 자원 주권'은 없다는 의미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국내 광산이 살아나 정광 수출로 이어지는 점은 의미 있다"면서도 "국내 광산은 완전 민간의 재산권이라 정부가 개입할 여지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민간 기업이 추진하는 사업인 데다, 완제품을 공급받을 수도 없는 상태라 현재로선 상동광산 텅스텐이 향후 자원공급망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정부, 자원안보 측면 투자 필요”

업계와 학계에선 전략광물 확보 차원에서 정부의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실제 산업부 산하 희소금속산업기술센터에 따르면, 텅스텐은 마그네슘과 함께 '자립가능형' 국가전략희소금속으로 분류돼 있다. 광물자원이 존재하고, 중간소재산업 기반이 이미 형성돼 있어 제련산업 확보 시 근원적 소재 자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딜레마가 만만치 않다. 정부와 업체, 학계 모두 텅스텐 주권 확보의 최우선 조건으로 제련 설비 구축을 꼽는다. 하지만 여전히 경제성이 떨어지는 게 문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 제련 시설을 설치하려면 상당한 비용과 허가 절차 부담이 따르기 때문에, 여전히 해외 완제품 수입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세계적 자원전쟁 현실을 감안한 과감한 투자 필요성을 강조한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는 “정부가 전략광물 확충을 위해 공기업과 공동투자하는 건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상동광산에서 캔 텅스텐을 국내에 유통하는 조건으로, 완제품 생산 설비를 지원한다면 전략광물을 보다 순조롭게 확보할 수 있단 얘기다.

채굴한 텅스텐을 전량 미국까지 보내야 하는 알몬티대한중석도 국내 판로가 열린다면 나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업체 관계자는 “국내 제련이 가능하다면 국내 기업에 판매할 여지는 충분하다”며 “또 자원위기가 발생한다면 얼마든지 GTP와 계약 조건을 재논의하거나 양해를 구할 수 있다”고도 했다.

텅스텐 주권 확보에는 환경과 안전 문제도 넘어야 할 산이다. 상동광산은 과거 대한중석 시절 비소, 불소 등으로 오염된 토양이 복구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른 유해물질 발생이 우려된다는 주장이 지역 시민단체로부터 제기된 상태다. 또 지난해 10월엔 낙석 사고로 70대 광부가 숨지는 등 업체의 조치가 미흡했다는 논란도 빚어졌다.

알몬티대한중석 관계자는 “과거에는 최종 가공품 생산 과정에서 화공약품을 사용했지만, 현재는 화공약품이 필요 없는 정광 작업까지만 진행돼 환경을 해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정광까지의 작업에서 생긴 광물찌꺼기도 시멘트와 섞어 다시 갱도를 메워가며 공사를 진행할 예정이라 과거보다 안전사고 우려도 적다”고 해명했다.

영월=글· 사진 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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