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서 스위핑 훈련하던 컬링 불모지 호주, 믿기 힘든 새 역사 썼다

입력
2022.02.07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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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에 전용경기장 하나 없어
대회 7연패 뒤 스위스, 캐나다 꺾어
"캐나다 럭비가 호주 이긴 꼴"

호주 동계스포츠 사상 가장 믿기 힘든 ‘빙판의 기적’이 일어났다. 자국에 전용경기장이 하나 없어 주방 바닥을 닦는 것으로 훈련을 대체했던 호주 컬링이 코로나19에도 굴하지 않고 세계 최강 팀을 상대로 역사적인 올림픽 첫 승을 올렸다. 올림픽 공식채널은 “동계올림픽 역사에 남을 업셋(하위 팀이 상위 팀을 꺾는 것) 장면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호주의 탈리 길(23)-딘 휴잇 조(28)는 6일 중국 베이징의 아쿠아틱 센터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컬링 믹스더블(혼성 2인조) 경기에서 스위스를 9-6으로 제압했다. 대회 시작 후 내리 7연패를 당해 남은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예선 탈락이 확정됐지만 2018 평창올림픽 2위 팀을 상대로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승리를 거뒀다.

호주 컬링의 각본 없는 드라마는 계속됐다. 같은 날 이어 진행된 대회 마지막 경기에서 평창올림픽 우승 팀 캐나다와 맞붙어 연장 접전 끝에 10-8로 누르는 대이변을 일으켰다. 컬링 강국 캐나다에는 이번 대회 전까지 길-휴잇 조를 지도했던 존 모리스가 선수로 직접 뛰어 제자들과 실력을 겨뤘으나 분패했다.

올림픽에서만 금메달 6개를 거머쥔 최다 우승국이 ‘불모지’ 호주에 패하자 외신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올림픽 채널은 7일 “마치 남자 15인제 럭비에서 캐나다가 호주를 이긴 것과 같은 결과”라고 비유했다. 세계 럭비에서 호주는 강호로 꼽히지만 캐나다는 약체로 분류된다.

이들은 컬링 불모지에서 컬링에 관심이 많은 부모의 영향을 받아 운동을 시작했다. 믹스더블이 최초로 올릭픽 정식 종목이 된 2018년에 처음 손발을 맞춘 이들은 호주에 컬링 전용경기장이 없어 주로 부엌에서 스위핑 연습을 했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빙상장에서 훈련을 했는데, 이 곳은 아이스하키와 스케이트를 타는 곳이라 빙질이 고르지 못했다.

해외 전지훈련 과정도 꽤나 힘들었다. 올림픽을 앞두고 캐나다에서 6개월가량 훈련하려던 계획은 코로나19 여파로 무산됐다. 국경이 폐쇄된 탓에 빙판도 1년 넘게 밟지 못했다. 지난해 3월에서야 스웨덴에서 2개월 훈련을 했고, 9월에 캐나다로 넘어갔다. 캐나다에서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배달 음식으로만 식사를 해결했다.

그렇게 조심하며 지냈는데도 베이징에 입성해 코로나19라는 큰 변수와 맞닥뜨렸다. 길이 지난 5일 늦은 시간에 대회 주최측으로부터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통보를 받아서다. 이에 호주올림픽위원회는 이들의 귀국 계획을 잡아놨지만 출국 시간을 얼마 안 남겨놓고 중국 보건당국으로부터 ‘유전자증폭(PCR) 검사 결과 유예 결정이 나와 경기에 나갈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싸둔 짐을 다시 풀어 경기장으로 향한 그들은 그렇게 호주 동계스포츠의 새 역사를 썼다.

휴잇은 “(공항으로 가는) 택시 타기 15분 전에 경기를 뛸 수 있다는 공식 전화를 받았다”면서 “호텔 방에서 유니폼을 챙기고, 다시 빙판으로 돌아가 2경기를 할 생각에 그 설렘은 상상을 초월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길도 “말 그대로 정말 극적인 하루였다”고 되돌아봤다.

김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