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비'로 상품권 사고, 기술지도는 나 몰라라… 김용균 비극 잊었나

입력
2022.02.10 11:00
10면
한국서부발전 안전분야 특정감사 결과
하청업체들, 안전비용 착복 여전 확인

2018년 고(故) 김용균 노동자가 숨진 한국서부발전. 2년 후에도 다른 노동자가 철제 구조물에 치여 사망하는 등 안전사고가 잇따르지만 안전 불감증은 여전했다.

10일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은 지난해 한국서부발전의 '안전분야 특정감사 결과 보고서'를 공개했다. 감사 결과 산업안전보건관리비(안전관리비)가 엉뚱한 곳에 쓰인 것으로 드러났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공사금액의 일정비율(1.2~3.43%)을 안전관리비로 편성하도록 규정해놓고 있다.

한국서부발전 소속 발전소와 계약을 맺은 한 하청업체는 똑같은 용품을 두고 각도만 달리한 사진을 여러 장 찍어 3개월간 안전용품 구입 비용을 받았다. 한국서부발전은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다가 뒤늦게 감사에서 이런 사실이 지적됐다.

안전관리비의 20% 이내를 사용하는 '기술지도' 비용도 착복 대상이었다. 기술지도는 재해예방 전문 지도기관으로부터 현장에 적합한 안전활동 기법뿐 아니라 안전·보건교육, 안전관리비 사용 계획 등을 지도·점검받는 절차다. 그러나 6곳의 하청업체는 이를 실시하지 않으면서도 기술지도 명목으로 총 706만7,000원을 타갔다.

한국서부발전 소속 발전소와 계약을 맺은 한 하청업체는 원청에서 받은 안전관리비로 상품권 30만 원어치를 구입, 안전관리 우수 근로자를 뽑아 이를 지급했다. 근로자 사기 진작 차원이라지만 이런 포상 형태는 안전관리비 집행 대상도 아니다. 안전관리비는 산업안전 관리자를 두거나 안전모, 안전 난간 등 안전용품 구입 등의 용도로만 사용 가능하다.

작업공정별로 안전대책을 세우고, 이를 승인받은 후 공사를 시작해야 하지만 이미 착공해놓고 안전관리계획서를 내는 사례도 있었다. 이를 관리 감독하는 안전관리 담당자는 관련 서류가 접수도 되지 않았는데 접수 및 승인일자를 적는 관리대장에 '제출됐다'고 임의로 기록하기도 했다. 감사실에서는 "안전관리계획서는 건설 공정벌로 발생 우려가 높은 안전 위협을 검토하고 보완하는 등의 조치로서 반드시 관련 부서의 검토와 승인이 착공 전 시행되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한국서부발전의 하청업체 안전관리비 부실 집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2016~2018년 2억8,598만 원이 넘는 안전관리비를 다른 곳에 썼다가 적발됐다. 하청업체가 배정된 안전관리계획서상의 금액을 모두 받아내려 실제 쓰이지 않은 돈까지 청구했던 것이다. 수년 전부터 지적된 사항이지만 지난해 감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해 적발됐다.

한국서부발전만의 문제는 아니다. 김용균씨 사망 이전이었던 2018년 이뤄진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공기업 안전관리비 실태점검'에서는 한국전력공사 등 9개 에너지 공기업에서 2년간 27억 원의 하청업체 안전관리비 부당집행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안전관리에 대한 관리·감독 부실은 산업재해로 이어질 개연성이 크다. 지난해 한국전력에서는 하청업체 노동자 김다운씨가 사망했다.

류호정 의원은 "한국서부발전 특정감사 결과와 이번 한국전력 하청 노동자 산재 사망을 계기로 산업부가 에너지 공기업 안전분야 전반에 대한 감사에 나서야 한다"라고 전했다.

전혼잎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