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보고 물어 물어 찾아왔어요. 버리기가 너무 아까워서…" 지난달 25일 한 중년 여성이 서울 청계천 새벽다리 근처의 우산 판매·수리점인 '연흥사'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에는 고장 난 3단 자동 우산이 들려 있다. 살이 부러져 잘 펴지지 않는다. 우산 수리 경력 40년인 연흥사 사장 김석환(60)씨는 쓱 살펴보더니 "30분 뒤에 오시라"고 했다. 얼마 안 가 또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 젊은 청년은 "친구가 좋아하는 물건인데 빌렸다가 부러뜨렸다"며 망가진 우산을 내밀었다. 조금 뒤, 감쪽같이 수리된 우산을 받아 든 청년과 그를 바라보는 김씨의 얼굴이 활짝 펴진 우산처럼 밝아졌다.
기술은 진보하나 물건의 수명은 짧아진다. 옷, 가방, 휴대폰, 노트북, 냉장고… 철마다, 해마다 쏟아지는 신제품에 밀려 수백만 원 하는 전자 제품도 몇 년 만에 헌신짝 취급받기 일쑤다. 유행이 지나서 혹은 싫증나서, 버리고 새로 사는 게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지만 한쪽에는 여전히 고장 난 물건을 고쳐 주고, 고쳐 쓰는 사람들이 있다.
김씨는 40년간 청계천5가 인근에서 우산을 팔고 고쳐왔다. 못 고치는 우산이 없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의 고장 난 우산이 이곳으로 모인다. 얼마 전 '우산 박사'로 전파를 탄 뒤로는 찾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우산이 망가지는 가장 흔한 이유는 살이 부러지는 것이다. 부러진 살을 함석으로 이어 붙여 수리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제대로 힘을 못 받아 다시 부러질 가능성이 높다. 그는 "부러진 살을 분해해서 그 우산 살의 길이와 간격에 맞게 교체한 뒤 조립하는 게 내 방식"이라고 말했다.
우산을 고치는 데 짧게는 10분 길게는 1시간이 걸린다. 수리비는 5,000~1만 원이다. 편의점에서 파는 우산 가격이 1만 원 내외임을 고려하면 싼 값은 아니다. 그래서 돈과 시간을 들여서라도 우산을 고치려는 사람들에게는 사연이 있을 때가 많다. "일하면서 30~40년 된 우산도 많이 보죠. 만 원도 안 되는 건데 만 원 들여서 고쳐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한테 그만큼 중요한 물건인 거죠. 엄마가 쓰던 양산인데 고쳐서 소장하고 싶다고 가져온 아들도 기억에 남고요. 손님이 고친 우산 펴보고 마음에 싹 들어 할 때가 제일 기분이 좋죠."
깨진 도자기도 수리가 된다. '금으로 이어 붙인다'는 뜻의 킨츠기를 이용하면 쉽다. 킨츠기는 옻칠 공예의 일종으로, 일본에서 15세기부터 전해져 오는 도자기 수리 방법이다. 깨진 도자기를 접착제로 붙인 뒤, 세필 붓에 옻을 묻혀 금이 간 자리를 따라 칠하고, 그 위에 금분(또는 은분)을 뿌려 마무리한다. 간이 킨츠기의 경우 1, 2시간 안에 수리를 끝낼 수 있다 보니 원데이 클래스에서 배워 직접 수리에 나서는 이들도 많다.
제주에서 도자기·킨츠기 공방 '라떼르'를 운영하는 조은혜 대표는 "아들이 어릴 때 그린 그림이 있는 도자기, 20~30년 사용한 친구 같은 다기 등 아끼는 도자기가 깨지거나 이가 나갔을 때 이를 수리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며 "킨츠기가 알려지면서 깨진 그릇에 대한 우리나라 특유의 부정적인 인식도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완전무결하지 않은 수리의 흔적이 그만의 멋이 되기도 한다. 조 대표는 "조각난 자리를 타고 금이 반짝이는 것을 보면 상처 난 감정이 회복되고,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이 탄생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사전적으로 짜깁기, 꿰매다는 의미의 '다닝(Darning)'도 단순히 기능적인 수선을 넘어, 나만의 무늬를 만든다. 다닝은 옷, 양말 등이 구멍나거나 해졌을 때, 그 부분을 실을 이용해 덧대는 작업을 가리킨다. 수선할 부분에 다닝 머시룸을 받쳐 고정한 뒤 여러 색의 실을 직교하며 빈 자리를 메우는 방식이 널리 쓰인다. 방법이 간단해서 누구나 유튜브 영상 등을 보며 쉽게 따라 할 수 있다.
손뜨개 공방 '슬로우 핸드'의 박혜심 작가도 본인과 수강생들의 옷과 양말을 다닝을 이용해 수선할 때가 많다. 이 과정에서 수선의 흔적이 그만의 독특한 문양이나 패치가 되기도 한다. 그는 "요즘은 수선하면서 옷에 다양한 무늬와 색상을 넣어주기도 한다"며 "아무리 기성품이라고 해도 내가 작업한 부분이 들어가다 보면 물건에 좀 더 애착이 가게 된다"고 말했다.
고쳐 쓰는 사람들은 물건을 덜 사기 마련이다. 김석환씨도 우산을 사서 쓰지 않는다. "손님들이 고친다고 가져 왔다가 그냥 두고 가는 우산들을 내가 고쳐서 쓰지. 우리 집에 고친 우산만 항상 20~30개씩 쌓여 있어요. 너무 많아지면 성당 앞에다 꽂아놔요. 그러면 싹 없어지지."
독일의 물리학자이자 국립독일박물관 관장인 볼프강 M. 헤클은 현대 사회에서 수리가 갖는 의미에 대해 주목해 왔다. 헤클은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장 난 물건을 어떻게 고칠지 토론하는 시간을 즐긴다. 그는 국내에 번역된 저서 '리페어 컬처(발행 양철북)'에서 "수리하고 수선하는 일은 단순히 스패너를 돌리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며 "리페어 컬처는 우리를 게으른 소비자로 내모는 산업의 흐름에서 벗어나, 더 지혜롭게 일상을 가꾸어가도록 안내한다"고 강조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수리와 수선이 사회·문화 운동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2009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시작된 '리페어 카페'가 대표적이다. 자원봉사자들은 상시 또는 임시로 열리는 리페어 카페에 모여 고장 난 물건을 무료로 고쳐준다. 유럽을 중심으로 현재 전 세계 2,000개에 달하는 리페어 카페가 운영 중이다.
박혜심 작가는 "살면서 하나도 안 사고 안 버리며 살 수는 없다"며 "(환경 문제에 대해) 너무 무겁게 생각하는 대신 내가 지금 실천 가능한 다닝부터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번 쓸 물건 두 번 쓰고, 두 번 쓸 물건 세 번 쓰다 보면 그런 게 모여 나중에 꽤 큰 결과물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조은혜 대표는 "고쳐 쓰면서 환경에 해가 되지 않는 삶을 지향할 수 있고, 고장 난 물건에 마음을 대입하면 수리하는 시간을 치유의 과정으로 삼을 수도 있다"며 "새것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내 물건을 사랑하고 그 가치를 발견하는 일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