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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글 때문에 오픈런까지? 서울 베이글, 뉴욕 부럽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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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달 28일 낮 12시. 서울 안국역 인근에 있는 한 베이글 전문점 앞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영하의 날씨에도 문 밖에서 대기하는 인원만 어림 잡아 20여 명. 직원에게 대기 시간을 물었더니 "매장에서 먹으려면 1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날 가게 앞에서 만난 김진경(43)씨는 두 아들 지환(15), 시율(12)군과 함께 양손 가득 베이글을 들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는 "포장해 가는 데도 20분 정도 기다렸다"며 "두 번째 방문인데 이번에는 지인들과 나눠 먹으려고 좀 많이 샀다"고 말했다.
서울이 베이글의 도시가 될 수 있을까. 한옥이 즐비한 북촌 거리에 베이글이 가득 든 봉투를 들고 줄지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갓 구워 나온 베이글을 사수하기 위해 '오픈런(매장 문을 열자마자 달려가 구매하는 것)'을 감행하는 사람들을 목격하고 나면 그 가능성은 확신으로 바뀐다.
베이글은 유대인들이 2,000년 전부터 만들어 먹던 빵이다. 끓는 물에 한 번 익힌 뒤 오븐에 구워내 식감이 쫄깃하다. 밀가루, 이스트, 물, 소금으로 만들어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 베이글만 먹는다면 다른 빵에 비해 칼로리도 낮다.
베이글의 매력은 담백함에 있다. 어떤 크림치즈를 선택할지, 어떤 토핑을 더할지에 따라 맛이 무궁무진해진다. 베이글도 가게마다 그 맛과 모양이 가지각색이다. 최재혁(24)씨는 "건강에 관심이 많아 다른 빵보다 첨가물이 적은 베이글을 즐겨 먹는다"며 "요즘 베이글 전문점에는 기존 카페에서 팔지 않던 다양한 종류의 베이글이 있어 자주 찾게 된다"고 말했다.
그래도 아직까지 베이글의 도시는 뉴욕이다. 베이글에 진심인 뉴욕에선 유명인의 베이글 취향이 논란이 될 정도다. 빌 드 블라시오 전 뉴욕시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데운 베이글을 먹었다'고 올렸다가 '먹을 줄 모른다'며 곤욕을 치렀다. 베이글은 보통 데우지 않고 먹는 게 일반적이다. 블라시오 시장은 친근한 정치인으로 보이기 위해, 생전 먹지 않는 베이글을 즐기는 척했다는 역풍을 맞아야 했다. 2018년 뉴욕 주지사에 도전했던 배우 신시아 닉슨도 시나몬 건포도 베이글에 연어와 크림치즈, 토마토를 넣어 먹는 식성을 공개했다가 어울리지 않는 괴상한 조합이라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베이글을 먹으며 코로나19로 막힌 해외 여행 분위기를 내는 이들도 많다. 뉴욕 유명 베이글 가게의 분점이 생기는 등 한국에 정통 뉴욕식 베이글을 추구하는 곳도 점차 늘고 있다. 최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자리한 베이글 전문점을 찾은 박채빈(24)씨는 "영상으로만 접했던 뉴욕식 베이글을 한국에서도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왔다"며 "한 끼 식사 가격으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안국역 근처의 베이글 전문점은 영국 런던을 옮겨 놓은 듯한 인테리어로 SNS에서 그 일대가 '서울시 종로구 런던동'이란 별칭으로 불린다. 정혜린(26)씨는 "런던에서 먹었던 베이글 맛을 그대로 재연했다고 해서 찾게 됐다"며 "베이글, 크림치즈를 고르는 재미가 있었고 런던을 똑 닮은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다"고 했다.
전미영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베이글 열풍은) 한 가지 메뉴만 깊이 있게 파는 MZ세대의 마니아적 소비 행태, '○대 맛집' 등을 정해 도장 깨기를 즐기는 트렌드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며 "소비자들이 워낙 해외 경험이 많기 때문에 해외의 특정 장소를 떠올리게 하는 콘셉트에 크게 호응하는 경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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