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4일 밤 개막한다. '평화의 축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얼어붙은 올림픽이지만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올림픽의 주인공은 언제나 올림피언이었다. 엄격한 방역을 뚫고 중국 베이징과 옌칭, 장자커우 현지에 도착한 태극전사들은 이제 새로운 드라마를 써 내려갈 채비를 마쳤다.
성적에 대한 전망이 밝진 않다. 대한체육회는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금메달 1~2개에 종합순위 15위권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우리 쇼트트랙 사령탑이던 김선태 감독이 중국 대표팀으로 건너갔고, 개최국 중국의 텃세가 예상되는 데다, 심석희 사태 등으로 전력이 약화한 점 등을 고려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남의 생각일 뿐, 도전에 나서는 선수들의 눈은 그 너머를 향해 있다.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제 기량을 마음껏 뽐내며 자신을 또 한번 넘어서겠다는 것이다. "선수라면 누구나 자신이 목표를 세우고 시합에 임합니다. 저도 제 목표가 있고, 다른 선수들도 자기만의 목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체육회가 제시한) 설정된 목표는 선수들에게 큰 의미가 없어요. 스스로 어떤 목표를 달성하고 싶은지가 중요하죠."(스피드스케이팅 김보름)
도전을 앞둔 선수들의 분위기도 화기애애하다. 2일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훈련을 마친 쇼트트랙 대표팀 맏형 곽윤기(33)는 "과거엔 훈련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면 방으로 들어가 어떻게 시합할지 고민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는데, 요즘에는 다 같이 테이블에 모여 예능을 보면서 수다를 떤다. 그런데 또 훈련할 때는 엄청나게 집중을 한다"며 "요즘 애들은 올림픽을 대하는 자세가 나보다 훨씬 좋다"고 말했다. 이유빈(21)은 "폐쇄되고 힘든 분위기 속에서 누가 더 처지지 않고 더 즐기느냐가 이번 올림픽의 키워드"라고 했다.
즐기며 도전하는 태극전사들의 새로운 문화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출전한 도쿄 하계올림픽에서도 유쾌한 드라마를 만들어 냈다. 황선우(19)는 수영 200m 자유형에서 150m까지 1위를 달리다 5위로 마무리했음에도 150m까지의 기록에 놀라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육상 남자 높이뛰기에서 한국신기록인 2m35를 넘어 4위를 차지한 우상혁(26)은 결선의 모든 순간을 밝은 표정으로 즐겼다.
도쿄의 울림은 베이징에서도 이어진다. 남자 스켈레톤은 월드컵 동메달을 목에 걸며 새로운 기대주로 떠오른 정승기(23)가 도전을 이어간다. 한국 썰매의 맏형이자 봅슬레이 간판 원윤종(37)은 10년 넘게 '합'을 맞춰온 브레이크맨 서영우(31)가 부상으로 이탈했지만 "불가능은 아니다"라고 되뇐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이후 6회 연속으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크로스컨트리 이채원(41)은 30위권 진입을 노린다. 스노보드에선 이번 시즌 세계랭킹 1위 이상호(27)가 금빛 질주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
"'역시 한국은 쇼트트랙'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쇼트트랙 대표팀의 목표다."(최민정) 당초 체육회가 이번 올림픽의 목표를 낮게 잡은 것은 쇼트트랙이 부진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대표팀 에이스 최민정(24)은 "어려웠던 저희 준비 상황을 알고 (부담을 덜 주기 위해) 그렇게 목표를 설정해 주신 것"이라고 웃어넘긴다. 지난달 30일 베이징에 도착한 대표팀은 개인전은 물론 첫 메달이 걸린 혼성계주 등 계주 종목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보다 섬세한 담금질을 시작했다.
외부의 평가는 내부보다 후하다. AP통신은 한국이 금메달 4개, 은메달 3개를 획득, 종합 13위를 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이유빈(여자 1,500m), 황대헌(남자 1,000m), 남자 5,000m 계주 등 쇼트트랙과 스노보드 이상호가 금메달을 딸 것으로 봤다. 외신에서 금메달 후보로 지목된 이유빈은 "부담이라면 부담이지만, 뭐 예상일 뿐"이라며 "좋은 쪽으로 생각해주는 게 좋은 거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컨디션을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