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반대할 것이 뻔했으므로 나는 입양 전에 부모님에게 알리지 않았다. 아이를 입양하려면 가족 상담이 필수였기 때문에 대신 남매를 동원했다. 아이를 인계받자마자 주민센터로 달려가 출생신고를 한 것은 어머니가 아이를 다시 데려다주라고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출판사 편집자인 백지선씨는 최근 독신으로 아이 둘을 입양해 키워낸 이야기를 담은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또다른우주 발행)를 펴냈다.
혼인과 혈연으로 꾸려지지 않은 다양한 형태의 가족상을 담은 책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용감한 솔로-내가 키운다' 등 '정상가족'의 통념을 뒤집은 TV 예능 프로그램이 화제가 된 가운데 서점가에서도 '새로운 가족'의 삶을 담은 책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긴 연휴는 반갑지만 전통적인 설 명절의 역할 규범과 가족 통합의 의미는 점점 옅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스스로 선택한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세상의 이해를 구하는 동시에 변화하는 가족상을 새롭게 들여다볼 실마리를 제공하는 '새로운 가족'을 다룬 책들을 소개한다.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의 대안적 가족 구성은 제도 변화와 함께 실현됐다. 저자는 2006년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비혼자도 보호대상아동을 입양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입양의 막연한 꿈을 이룰 수 있었다. 2008년 정보 검색 중 독신자도 입양할 수 있음을 알게 된 저자는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2010년 첫째 딸을 입양했다.
저자는 아이에 대한 사랑을 이웃과 약자에 대한 사랑으로 확대하는 경험을 얻었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어머니, 여자 형제와 서로 돌봄과 부양을 주고받는 양육 공동체를 꾸리면서 평등한 가족으로 거듭나는 모계 확대가족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베스트셀러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위즈덤하우스 발행·2019년)를 필두로 한 여성 2인 가구와 관련된 책 출간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여성 2인 가구 생활'(텍스트칼로리 발행)은 두 친구가 공동체를 이룬 여성 가구를 보여준다. 건강하고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두 저자의 생각을 바탕으로 친구와 함께 공동체를 이루는 과정과 현실적인 여성의 재테크,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이 담겼다.
미국에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결혼하지 않고 우정을 나눈 독신 여성을 일컬었던 '보스턴 결혼'을 키워드로 삼아 여성 동거를 다룬 책도 있다. '보스턴 결혼'(봄알람 발행)은 연인으로서 공동체를 이룬 여성 가구를 다룬다. 레즈비언 커플의 성애 외적인 국면을 조명함으로써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 간 관계의 다양한 방식을 보여준다.
'우리가 선택한 가족'은 소위 딩크족이라 불리며 아이를 갖지 않기로 선택한 부부의 이야기를 담았다. 1995년 결혼해 아이 없이 살고 있는 미국 메인대 사회학 교수 에이미 블랙스톤은 인생의 우선순위를 지키고자 아이 없는 삶을 택한 남녀 70여 명을 인터뷰하고 700명 이상을 설문조사했다. 책은 저마다의 상황에서 최선이라고 판단되는 방식을 택할 권리를 강조한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선언에 이기적이라고 비판하는 사회적 인식에 반기를 들고, 현대사회에서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지 고찰해볼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
'오히려 최첨단 가족'(책소유 발행)은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전통적 가족 형태에서도 변화를 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4인 가족' 안에서 개인들이 자기다운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 일상에서 여러 실험을 한다. 이를 통해 '원시 부족민 같은 정서 상태'가 돼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서로 다른 개인이 고유성을 잃지 않고 함께 살기 위해, 전체의 생존을 위한 가사 노동만을 가족의 의무로 정하고 다른 모든 부분에서 폭넓은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대해서도 아이는 아이의 삶을 살고 부모 역시 부모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사회 통념상의 성공 기준을 벗어나기 위해 끝없는 대화를 시도하는 가족이 됐을 때, 오래 지속 가능한 운명공동체로서 가족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