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임플란트 대량 구매…中, 국산화로 ‘치아 굴기’ 시동

입력
2022.02.06 12:00
19면
"치아 전체 임플란트하면 집 한 채 값"
서민들 푸념에 中 정부 대량 구매키로
中 시장 37조, 10년간 시술 31배 증가
해외의존 90%, 국산화 '치아 굴기' 나서
치과 의사 수 적고 인건비 높은 건 한계


한국처럼 중국도 임플란트 비용이 상당히 부담스럽다. 치아 한 개를 시술하는 데 6,000~2만 위안(113만~388만 원)이 든다. 중국 대졸자 평균 초임(6,000위안)보다 비싸다. 지난해 초 지방의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는 “치아 전체에 임플란트를 하면 현급 도시에서 집을 한 채 사는 돈과 맞먹는다”는 푸념마저 터져 나왔다. “중국에서 치아 한 개는 외제차 한 대 값”이라던 과거에 비하면 사정이 많이 나아졌지만, 임플란트는 여전히 대다수 서민들에겐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다.

정부가 나섰다. 중국 국무원 상무회의는 지난달 10일 “고가의 의료용품을 국가와 성 차원에서 대량 구매해 환자의 의료비를 절감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례도 있다. 앞서 2020년 정부가 의료품 구매에 개입하면서 심장 스텐트 시술(심장혈관 확장) 비용은 1만3,000위안에서 700위안으로 95%가량 낮아졌다. 인공관절 이식 환자 부담은 80% 이상 떨어졌다. 임플란트의 경우 가격 인하 폭은 70~80%에 달할 전망이다.


중국의 고령화 추세에 가속이 붙으면서 임플란트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지난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4.2%를 차지했다. 임플란트 보급은 2011년 13만 개에서 2020년 406만 개로 10년 만에 31배 증가했다. ‘2020 중국 구강의료산업보고서’에 따르면 치료가 필요한 중국인의 치아는 26억4,200만 개, 잠재적 임플란트 수요는 1,888만 개에 달한다. 이에 정부와 업계는 중국 임플란트 시장 규모가 2,000억 위안(37조8,400억 원)은 족히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신랑차이징은 “중국 인구와 고령화 수준에 비춰볼 때 시장 규모가 향후 최대 10배는 더 성장할 여지가 있다”고 전망했다.

이처럼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는데도 정작 중국 업체들은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 임플란트 대부분을 한국, 스위스, 일본 등 해외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중국 내 수요의 90% 이상을 외국 제품으로 충당하는 형편이다. 2020년 중국의 임플란트 수입액은 4억429만 달러(4,877억 원)로, 전년보다 7.3% 늘었다. 부유층이 선호하는 고가의 제품도, 중산층이 찾는 가성비 높은 제품도 모두 외국산이 점령한 실정이다.

미국과 글로벌 패권을 놓고 각종 첨단산업 분야에서 경쟁하는 중국으로서는 체면을 구기는 일이다. 이에 정부의 대량 구매 조치가 중국산 임플란트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란 기대가 크다. 임플란트 소비자의 저변도 넓히고, 중국 업체가 만든 임플란트 수요도 늘리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논리다. 린젠핑 지다쑤이화 구강의료그룹 부회장은 “고가의 의료용품을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건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정부의 임플란트 대량 구매는 중국산 굴기의 풍향계이자 수입 브랜드를 국산화로 바꾸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시진핑 주석 집권 이래 중국이 주창해온 이른바 ‘굴기(崛起·우뚝 섬)’ 행렬에 ‘치아 굴기’가 추가되는 셈이다. 중국은 그간 ‘군사 굴기’, ‘해양 굴기’, ‘우주 굴기’, ‘기술 굴기’ 등 각 분야마다 미국에 맞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왔다. 런민쯔쉰은 “오랫동안 수입 제품이 장악한 임플란트 시장에 중국산 브랜드가 파고들어 급부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중국산 제품을 양껏 구입해 쌓아놔도 임플란트 시술 자격을 가진 의사가 부족한 점은 고질적 문제로 남아 있다. 각국의 인구 10만 명당 치과 의사 수가 노르웨이 87명, 일본 81명, 대만 64명, 미국 61명, 한국 50명, 러시아 48명인 데 반해 중국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18명에 불과하다. 멕시코(14명)보다 겨우 앞선 수준이다. 또한 임플란트 비용 가운데 인건비 비중이 70%에 달해 정부의 대량 구매에도 불구하고 실제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가격 인하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베이징= 김광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