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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서울 영등포구 한 주택가 옥상에서 4년 동안 방치된 채 길러지던 개가 있었다. 개 보호자는 하루 한 번 밥만 챙겨줄 뿐이었고 이마저 없는 날도 많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한 주민이 개에게 밥을 주며 돌보던 중 보호자는 "키울 분이 데려가라"는 쪽지를 남기고 떠났다.
그해 9월 동네 어르신들이 개를 잡겠다고 끌고 가는 장면을 목격한 주민은 다급하게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동자연)에 도움을 요청했다. 동자연 활동가들이 현장에 나와 어르신들을 설득했지만 개를 놔주지 않았다. 조영연 동자연 실장은 결국 2만 원을 주고 개를 데려왔다. 그렇게 구조된 개가 '꼬마'(15세 추정∙수컷)다. 하지만 꼬마가 새 가족을 만나는 데 10년이 걸릴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꼬마의 긴 기다림은 지난해 7월 김고은(35)씨를 만나고서야 끝났다.
김씨와 꼬마는 어떻게 만나게 됐을까. 처음부터 꼬마를 입양하려 마음먹은 건 아니었다고 한다. "동자연이 구조한 까만 개 '희망이'를 대부모로서 후원하고 있었어요. 초등학교 때 길렀던 개와 너무 닮아서였어요. 사정이 되면 희망이를 입양해야지 생각했는데 지난해 4월 희망이가 해외 입양을 갔어요. 새로운 결연동물이 자동 배정됐는데 그게 꼬마였죠."
그러면서 김씨는 꼬마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4년은 옥상, 10년은 보호소에서만 생활한 꼬마에게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던 차 부모님께 꼬마의 이야기를 전했고, 부모님도 흔쾌히 꼬마의 가족이 되어주기로 했다. 지난해 7월 30일 꼬마는 김씨의 식구가 됐다.
열네 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의 개를 입양하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터다. 게다가 꼬마는 2013년 보호소 내 다른 개들과 싸우면서 엉덩이를 물려 꼬리에 큰 상처를 입은 후 항문 부위를 관리 받아야 했다. 또 노령으로 인해 간 수치도 정상 범위에서 벗어나 약을 꾸준히 먹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씨는 "꼬마를 입양하겠다고 하니 동자연 활동가들도 이례적이라고 했다"며 "혹시 상황을 모르고 입양하나 싶어서였는지 꼬마에 대해 정말 세세히 알려줬다"고 설명했다. 이어 "꼬마에게 가족이 되어주기로 한 이상 나이와 건강상태, 품종은 중요하지 않았다"며 "꼬마 결연을 시작하고 입양하는 데 2개월 정도 걸렸다. 인연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14년 동안 한번도 실내에서 한 가족과 생활한 경험이 없는 꼬마는 잘 적응을 했을까. 김씨의 걱정이 무색하게 꼬마는 새 환경에 빠르게 적응해 갔다. 김씨의 집에 온 당일 꼬마는 거실이 아닌 방 안에 준비된 물그릇을 스스로 찾아가 물을 마셔 가족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꼬마가 완전히 마음의 문을 연 건 아니었다. 김씨는 "3개월 정도 지나자 침대에 올라와서 잠을 자고, 똑같은 간식을 주면 안 먹고 버티는 등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며 "꼬마는 눈치가 빠른 만큼 고집도 세다. 이제 마음대로 해도 받아줄 가족이 있는 걸 아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꼬마는 김씨의 생활 패턴뿐 아니라 직업도 바꿨다. 먼저 늦게 들어오는 걸 너무 서운해 하는 꼬마 때문에 귀가 시간이 빨라졌고, 여행을 가도 다음날 일찍 올라올 수밖에 없다는 게 김씨의 설명. 김씨는 또 꼬마를 입양한 지 4개월 후인 지난해 12월 초부터 동자연 활동가로도 근무 중이다. 김씨는 "10년 전 방송국 조연출을 하면서 동물수집꾼(애니멀호더) 촬영을 나간 것을 계기로 동물구조 일을 하고 싶었다"며 "꼬마 입양을 계기로 예전에 품었던 꿈을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고 전했다.
김씨는 "동물권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던 저조차도 유기동물에 선입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라며 "문제가 있어 버려진 건 아닐까, 어디 아프진 않을까 등 걱정하는 부분에 대해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어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꼬마를 데려왔다"며 "하지만 각오가 무색하게 꼬마와 잘 지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호소에 있던 동물이 새 가족을 만나면 성향이 많이 바뀐다고 합니다. 그런 걸 보면 유기동물이라고 해서 선입견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어떤 동물이든 그 동물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결국 보호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