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제작진이 촬영 현장에서 강제로 쓰러트린 말이 사망하면서 동물학대 논란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이달 19일 동물보호단체들이 촬영 현장 영상을 공개한 뒤 "방송 촬영을 위해 동원되는 동물을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26일까지 14만 명 넘게 동의했다.
KBS는 관련 제작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며 20일에 이어 24일에도 재차 사과했고 농림축산식품부도 미디어 출연 동물 관련 규정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비판 여론은 거세다.
문제가 된 장면은 지난해 11월 2일 방송된 '태종 이방원' 7화에 나온다.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가 공개한 영상을 보면 배우를 태운 말이 발목에 와이어가 묶인 채 달려 나오다 몸체가 강제로 뒤집히며 고꾸라진다. 이 과정에서 배우 역시 아무런 보호장치가 없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촬영 직후 스태프들이 배우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다급하게 달려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바닥에 쓰러진 말은 쓰러진 채 움직임조차 없었지만 말의 상태를 확인하는 이는 없었다.
동물자유연대와 카라, 한국동물보호연합 등 동물보호단체는 드라마 촬영 책임자와 제작사를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동물단체들은 해당 장면이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동물보호법 제8조 제1항 등을 위반한 동물학대로 보고 있다.
한재언 동물자유연대 법률지원센터 변호사는 "제1항 이외에도 유흥이나 오락의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힌 행위를 금지하는 동물보호법 제2항 제3호, 정당한 이유 없이 잔인한 방식으로 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금지하는 제4호를 위반한 것으로 본다"며 "다만 고의성을 따져봐야 하기 때문에 수사기관에서 수사를 해봐야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말이 고통스러운 죽음을 당한 이번 사건은 현행 동물보호법의 학대 조항으로도 명백히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며 "다만 상해를 입지 않더라도 동물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까지 금지하도록 동물보호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도박 등 사람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을 사용하는 것을 어디까지 용인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낙마 장면에 동원된 말이 퇴역 경주마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이들에 대한 복지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확인 결과 방송에 쓰인 말은 '까미'라는 이름으로 퇴역한 경주마였다"며 "까미는 평생을 인간의 오락을 위해 살아야 했고, 결국 고꾸라지며 쓰러져야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정현 전 한국재활승마학회 이사는 "질주보다 사람을 따르는데 능숙한 경주마들도 있다"며 "이들은 경마장에선 쓸모가 없지만 승용으로 적합해 승마, 꽃마차 말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태종 이방원에 동원된 말은 퇴역 경주마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퇴역 경주마 복지체계 구축을 주장해 온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와 제주생명권행동단체 제주비건은 성명을 내고 "경주마 퇴역 시 신고 기준의 정확성은 낮고 용도 변경 추적 관리는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며 "경주마의 전 생애 복지 체계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한국마사회 역시 은퇴한 경주마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