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여성가족부는 '양성평등조직혁신추진단'을 출범시켰다.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 사태 같은 '권력형 성범죄' 때문에 공공부문의 허술한 성폭력 대응 체계가 연일 도마에 올랐고,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조직문화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공감대가 생기면서다. 그 첫발로 추진단은 공공기관의 성평등 수준을 측정하는 진단에 들어갔다. 결과는 '옛날에 비하면 나아졌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로 요약된다.
25일 여가부가 공개한 20개 기관(광역 15개+기초 5개) 양성평등 수준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구성원들은 조직 전반적으로 '3년 전보다 개선됐다'고 평가(5점 만점에 3.37점)했다. 인사와 권한, 직무배치, 일·생활 균형, 성희롱 예방 등에서 불평등 자체는 전보다 줄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성별 격차는 여전히 뚜렷하다. 자리를 불문하고 남성의 비율이 월등히 높거나 업무에 따라 특정 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확연히 드러났다. 5급 이상인 관리자 중 여성은 광역 22%, 기초 24.4%에 그쳤다. 성비 보정(전체 남녀 비율이 같다고 가정했을 때) 후에도 여성 비율은 광역이 29.1%, 기초 27.8%로 30%를 채 넘지 못한다.
승진 등 인사가 성별과 상관없이 공정하다고 인식하는 정도는 남녀, 연령에 따라 갈렸다. 5점 만점에 남성은 3.63점인 반면, 여성은 2.96점이었다. 성별 공정성에 가장 후한 점수를 준 건 50대(3.46점), 최저는 30대(3.21점)로 세대 간 격차도 존재했다.
직무배치에선 성별 분리 관행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다. 일단 남성이든, 여성이든 한 성별이 60%를 넘지 않는 성별 균형 부서는 30% 미만(광역 28.5%·기초 26.1%)에 불과하다. 비서직만 봐도 일정을 관리하고 서무를 보는 비서는 87.4%가 여성이고, 정무·수행비서는 88.8%가 남성이다.
당직 방식에서도 성별 분리는 뚜렷했다. 낮 시간에 당직을 서는 일직과 밤을 새우는 숙직을 남성과 여성 모두 수행하는 기관은 20개 중 4개뿐이었다. 숙직 제도가 없는 1개 기관을 제외하면, 15개 기관이 남성은 숙직, 여성은 일직으로 정해놓은 것이다. 출장이 잦고 야근, 휴일 근무가 많은 곳엔 남성을, 민원 창구나 부속실, 손님 접대 업무엔 여성을 배치하는 식이다.
이 외에도 육아휴직 활용률은 남성(광역 7.5%·기초 7.6%)과 여성(광역 24.2%·기초 31.2%)이 3배나 차이 났다. 부서 배치 시 남성을 선호하는 경향은 5점 만점에 광역과 기초 모두 3점대를 기록했고,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 보호에 대한 신뢰도는 여성(2.38점)과 20대(2.41점)가 낮게 나타났다.
여가부는 기관별 진단 결과를 분석해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맞춤형 자문회의를 열 계획이다. 이 회의를 통해 각 기관의 인사, 조직 등 담당자들과 진단 전문가가 함께 개선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여가부는 이행 여부를 양성평등정책 시행계획 평가에 반영해 실효성을 높일 계획이다.
정영애 여가부 장관은 "지자체의 양성평등 조직문화는 과거에 비하면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지만, 성별 분리 관행이 여전히 남아 있고 성희롱 대응체계에 대한 신뢰도도 낮다는 게 확인됐다"며 "각 기관의 현황 진단을 토대로 실현 가능한 개선과제를 도출하고 구성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양성평등 조직문화 조성을 이끌어내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