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정부세종청사 앞은 성난 농심의 절규로 가득했다. 군(軍) 부대에 농축수산물을 공급하는 전국 400여명 농민들은 "국방부의 경쟁입찰 도입이 접경지역 특별법을 어긴 것"이라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성난 농심은 배추와 파 등 농산물을 투척하며 반발했다. 상생을 외면한 정부와 국방부를 비판하는 피켓을 든 농민도 눈에 띄었다.
화천 군납비상대책위원회를 비롯한 농민들은 그 동안 청와대와 국회, 국방부,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앞에서 상경집회를 열며 경쟁입찰 철회를 요구해왔다.
이들은 건의문을 통해 "군납 농산물의 경쟁 조달은 전방 사단급 식자재의 안정적 조달을 저해하고 군납 농가들의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라며 "국방부가 일방적인 정책을 계속 감행한다면 군납 생산 농가들은 생업을 포기하고라도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국방부가 50년 만에 군납제도 변경을 추진하고 있으나 좀처럼 농민들과의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급기에 강원 화천지역에선 상생을 외면한 군 부대가 내놓는 쓰레기 등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군 부대가 주민들로부터 외면받을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24일 강원도와 화천군 등 접경지역 지자체에 따르면 국방부는 올해 지역농협과의 계약 납품 물량을 30% 줄이는 것을 시작으로 2025년엔 경쟁입찰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불량급식 논란이 불러져 망신을 당하자 파격적으로 보일 수 있는 대책을 내놓은 것 아니냐"는 게 안팎의 분석이다.
이에 대해 전국 군납 농협과 축협, 수협은 "국방부가 부실급식 책임을 농민들에게 돌려 판로를 잃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반발했다.
갈등이 다시 한번 확인된 건 지난 19일 화천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열린 국방부와 주민들의 간담회 자리에서다.
화천에 온 국방부 관계자는 "경쟁체제 도입으로 다양한 공급자가 군 납품 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화천에서 생산한 농산물이 신선도와 단가 등 조건에 맞는다면 선택권을 가진 군 부대에서 우선순위에 따라 구매하게 되는 만큼, 기존 군납농가들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현장의 농가들의 입장은 다르다. 화천읍의 한 농가는 "부대 내 상황 등을 고려한 안정적인 공급보다 가격에 초점을 맞추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현장에선 이런 이유를 들어 올해부터 김치를 완제품으로 공급받으면 대기업이 낙찰 받을 가능성이 클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춘천철원화천양구축협은 저가경쟁이 현실이 됐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육군 모 사단의 식재료 입찰결과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스페인과 미국, 프랑스산 돼지고기가 등장하는 등 저가입찰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강원 접경지역에선 군 당국이 불량급식에 대한 책임을 농민들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특히 국방개혁2.0 정책에 이어 군납제도 변경으로 지역경제가 타격을 입게 되자 군 당국에 대한 반감이 커진 셈이다.
지역정가에선 국방부가 '접경지역 안에서 생산되는 농축수산물을 우선하여 군부대에 납품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접경지역지원특별법(제25조)을 어겨가며 제도 변경을 강행하고 있다는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화천 비대위 등 지역사회 일각에서 강하게 맞대응 하자는 주장이 등장한 이유다. 비대위는 지역 군납을 사용하지 않는 군 부대의 쓰레기 반입 차단을 신중히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문순 화천군수는 "접경지역 주민들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오랜 세월 포 사격으로 인한 굉음은 물론 군사훈련, 군사시설 규제 등으로 인한 피해를 감수하며 살아왔다"며 "달래줘도 모자를 상황인데 국방개혁으로 인한 부대해체, 군납 경쟁입찰까지 한번에 강행하니 반발이 큰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군수는 이어 "군납이 경쟁입찰로 변경되면 농산물 수집자와 유통자 등 단계가 늘어나 단가는 올라가고, 신선도는 떨어질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국가안보의 근본인 군 급식에도 문제가 생길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