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미술시장은 '바른 성장'이 최우선돼야 한다."
24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 한국화랑협회 주최 '회원 화랑 옥션'에 앞서 출품작을 선보이는 프리뷰 전시가 한창인 이곳 입구에 적힌 문구다. 이날부터 사흘간 프리뷰 전시를 한 후 26일 오후 화랑 간 경매가 이뤄진다. 경매의 주체는 서울옥션도, 케이옥션도 아닌 전국 165개 화랑이 모인 화랑협회다. 미술품을 전시하고 젊은 작가를 키우는 화랑이 '바른 성장'을 내세우며 경매에 뛰어든 이유는 뭘까.
화랑협회는 이달 초 양대 경매사인 서울옥션·케이옥션을 향한 비판 성명을 내고 이들의 잦은 옥션 개최와 작가와의 직거래를 문제 삼았다. "옥션사들이 오늘만 살 것처럼 수익 창출에만 집중하면서 미술 시장의 건강한 성장을 저해한다"는 게 화랑협회 측 주장이다. 갈등의 배경에는 전례 없는 미술 시장 호황이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미술품 경매 낙찰 총액은 3,242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전년(1,139억 원) 대비 약 3배 늘었다. 경매 역시 지난해만 255차례 열렸다.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은 크고 작은 경매를 각각 80여 회씩 개최했다. 잦은 경매는 출품작 부족을 야기했고, 경매사가 직접 작가에게 연락해 출품을 의뢰하는 일이 빚어지고 있다. 화랑협회가 발끈하는 대목이다.
윤여선 화랑협회 홍보이사(갤러리 가이아 대표)는 "미술 시장이 호황이던 2007년 당시 낙찰가가 크게 올랐던 젊은 작가들 중 상당수가 이후 다시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재기를 못하고 사라졌다"며 "옥션사는 후일을 책임지지 않기에 (작가·옥션사 간 직거래와 잦은 경매가) 장기적으론 작가들의 성장에 해가 된다"고 짚었다. 낙찰이 잘되는 작품에만 시장이 쏠리면서 미술 시장 다양성을 해치게 되는 건 물론 유찰이 되거나 낮은 낙찰가를 받은 작가의 경우 이후 작품 활동 자체에 위기를 맞게 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는 설명이다. 이에 화랑협회는 양대 옥션사에 과도한 옥션 개최 횟수를 줄이고, 작가들에게 직접 경매 출품·판매 의뢰를 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번 갈등이 1차 시장인 화랑과 2차 리세일 시장인 경매사 간 '밥그릇 싸움'으로 비치는 것은 경계한다. 오는 9월 세계적인 아트페어인 영국 프리즈가 열리는 등 올해 국내 미술 시장이 글로벌 마켓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로에 선 만큼 양적 성장이 아닌 미래를 내다보는 질적 성장을 도모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황달성 화랑협회장은 "서울이 아시아에서 홍콩과 경쟁하는 세계적 미술 시장으로 들어서기 전 자체 정비를 위해 옥션사와의 상생이 우선돼야 한다"고 했다.
이번 화랑협회 주최 옥션은 양대 경매사에 대한 화랑들의 단체행동 성격을 띤다. 옥션을 표방하지만 기존 옥션과 달리 회원 화랑 간 매매가 이뤄지고, 출품·낙찰 수수료는 없다. 근작 출품은 지양하고, 과년작을 선보인다. 박수근, 박서보, 이우환, 손상기, 김창열, 이인성 등 한국 근현대 대표 작가부터 화랑의 안목으로 선정한 젊은 작가까지 110여 명의 117점이 출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