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국내 기업 중 최초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 도입을 공식화해 시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직원 보호 및 사업 차질 방지를 위한 사전 조치로 알려졌지만 백신 미접종자가 음성 진단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출근을 금지시킨 부분은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KAI는 지난달 31일 ‘당사 백신패스 운영 안내’ 지침을 공지했다. 계도기간을 거쳐 이달 10일부터 적용된 이 지침은 코로나19 예방백신 미접종자나 2차 접종 후 6개월이 지나 효력이 없어진 직원은 원칙적으로 회사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백신을 맞을 수 없는 기저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이나 임산부는 의사소견서를 받아 확인하면 예외를 적용하고 있다. 임직원뿐 아니라 협력업체 직원을 대상으로 경남 사천 본사와 서울사무소, 사업장 등에 모두 적용됐다.
문제는 백신 미접종자가 ‘음성’ 판단을 받았다는 걸 증명하지 못하면 아예 출근까지 금지시켰다는 데 있다. KAI는 백신 미접종자가 매주 월요일 48시간 이내 실시한 유전자증폭(PCR) 검사 결과 음성 판단을 받았다는 확인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출근금지’ 하도록 지시했다. PCR 검사를 받기 위한 공가는 사용할 수 없고, 검사에 따른 비용도 지원하지 않는다. 출근금지 대상에 대한 별도 지침은 없지만 공가 등 지원이 없기 때문에 출근 의사가 있어도 개인 연차를 강제로 소진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KAI 측은 현재 출근금지 조치를 당한 직원이 없다는 이유로, 출근금지자 처우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법조계에선 KAI의 조치가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고 우려한다. 임직원 보호나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사업 차질을 막기 위해 방역패스를 도입한 취지는 정당하지만, 덜 제한적인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는 취지다. 법무법인 YK 조인선 파트너변호사는 “근로자 입장에선 헌법상 보장된 직업의 자유가 제약을 받는 것”이라며 “마스크 착용 및 식사 주의 등 기본권을 덜 제한하는 방법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에 피해의 최소성이 결여돼 비례원칙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기저질환 등 백신 접종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소명하기 위해 진단서를 제출하는 것도 민감한 개인정보 제출을 강제해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할 여지도 있다.
다른 기업들도 KAI의 엄격한 기준을 이해하면서도 정도가 과하다고 보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의 기업들도 직원들에게 백신 접종을 강요할 수 없어, 고심 끝에 접종을 유도하고 필요 최소한의 인원만 출근시키는 등 재택근무를 권장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사업에 차질이 생기면 막대한 지체상금을 물게 되는 KAI의 특수성도 있겠지만, 백신의 안전성도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회사 출입까지 제한하면 인권침해 소지가 크다고 판단해 대부분 백신 접종을 권유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행정법원도 이달 14일 “방역패스가 제한 없이 광범위하게 시행된다면 백신 미접종자들은 백신 접종을 강제받는 상황에 처하게 될 수 있다”며 마트·상점·백화점에 대한 방역패스 효력을 중단했다. 백신 접종을 마치지 않은 변호인의 교정시설 수용자 접견을 제한한 법무부 방역조치에 대해서도 집행정지 결정을 내렸다.
KAI 관계자는 “코로나19가 발생·유입되면 한 건물을 폐쇄하는 등 조치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사업에 차질을 빚을 수 있어 내부적으로는 강화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