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후 카라테 키즈, 왕좌는 누가 차지할 것인가

입력
2022.01.22 10:00
19면
<71> 넷플릭스 '코브라 카이'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작가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됩니다.


'코브라 카이'는 2018년 유튜브 오리지널로 시작했다. 1시즌부터 인기는 좋았지만, 유튜브가 오리지널 제작에 심드렁해지며 3시즌부터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넘어왔다. 재미있다는 말을 익히 들었음에도 손이 안 갔던 이유는 원작이라 할 영화 '베스트 키드(1984)'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괴롭힘당하는 소년 다니엘이 동양 무술을 배우는 내용의 '베스트 키드'는 이야기도 전형적이고, 오리엔탈리즘을 적당히 포장한 영화였다.

당시 '베스트 키드'는 3편까지 만들어진 흥행작이었다. 1편은 9,100만 달러, 2편은 더 성공해서 1억1,500만 달러 수익을 올렸다. 1989년에 개봉한 3편이 애매한 성적을 거두며 중단됐고, 1994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외전 격의 '가라테 키드'는 완전히 참패했다. 하지만 '베스트 키드'는 싱글맘 가정의 히스패닉 소년이 일본계 미국인 스승의 지도로 가라테를 배워 머리 나쁘고 성질 더러운 백인 운동부의 괴롭힘을 극복한다는 설정으로 당시 미국 사회에 나름 큰 문화적인 영향을 끼쳤다.


2010년 성룡이 출연하고, 무대를 중국으로 바꿔 리메이크한 '베스트 키드'는 윌 스미스가 제작했다. 아들 제이든 스미스가 출연해 성룡에게 무술을 배우고, 못된 중국인에게 승리한다. 흑인들이 이소룡과 성룡의 액션을 좋아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베스트 키드'는 미국에서만 1억7,600만 달러, 해외 1억8,300만 달러로 모두 3억6,000만 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올렸다. 그럼에도 속편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이후 벌어질 스토리가 너무 뻔해서가 아닐까. 쿵푸를 배워 고수가 된 흑인이 미국으로 돌아와 백인들과 싸우는 스토리도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하지만 '베스트 키드'의 기본 설정이 여전히 대중적이고 흥미롭다는 것은 분명하다. 대중적인 오리엔탈리즘이지만, 신비함을 가진 동양 무술을 배워 사악한 라이벌에게 승리하고 나아가 정신적인 면에서도 성장한다는 스토리는 언제나 유효하다.

'베스트 키드' 리메이크의 속편은 만들어지지 않았고, 2018년 다시 윌 스미스가 제작에 참여한 '코브라 카이'가 제작된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는, 뭐지? 했다. '코브라 카이'가 '베스트 키드' 3부작의 악역을 담당하는 가라테 도장의 이름이라는 것을 뒤늦게 떠올렸다. '코브라 카이'에는 3부작의 주인공들이 모두 출연한다. 다니엘 역의 랄프 마치오, 라이벌인 조니 역의 윌리엄 자브카, 코브라 카이의 사범이었던 크리스 역의 마틴 코브 등등. 찬란한 시절에서 30년도 훨씬 지난 중년 남자들의 이야기가 뭐가 재미있을까 의심했다. 착하고 심심한 다니엘에게도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코브라 카이'가 북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어도 외면했던 이유다.


하지만 '코브라 카이'를 보기 시작하자마자 왜 성공했는지 알았다. 주인공이 다니엘 라루소가 아니라 1편에서 패했던 조니 로렌스이기 때문이다. 전학생 다니엘을 괴롭히던 조니는 멍청한 근육질의 백인이다. 조니는 다니엘에게 패한 후 스승 크리스에게도 배신당하고 사라져버렸다. '코브라 카이'는 루저인 조니를 전면에 내세운다. 조니와 다니엘은 이후 30여 년을 어떻게 살았을까. 다니엘은 몇 번의 실패를 거친 후, 대형 자동차 판매점의 주인으로 성공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 아들과 함께 행복한 중년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가라테 도장을 운영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스승 미야기의 가르침을 잘 기억하고 있다.

조니는? 여전히 1980년대에 머무르고 있다. 클래식카라고 우기는 낡은 자동차를 타고 시끄러운 추억의 헤비메탈을 듣고, 날마다 맥주를 마시며 막노동을 하고 있다. '백인 쓰레기'의 전형적인 삶이다. 가족도 없고, 미래도 없이 지지부진한 나날을 보내던 조니는 우연히 동급생에게 괴롭힘당하던 에콰도르 출신 싱글맘의 아들 미겔을 도와준다. 간만에 가라테 실력을 보여준 조니는 미겔에게 가라테를 가르치다가 도장까지 세운다. '코브라 카이'가 부활한 것이다. 하지만 멍청하고, 성질 급하고, 폭력적인 조니가 갑자기 품격 있는 스승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제자들에게 욕하고 조롱하고, 위험한 훈련을 강요한다.


'코브라 카이'의 주인공이 다니엘이었다면 정말 뻔한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새로운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다니엘이 가르치는 이야기도 지루하다. 대신 '코브라 카이'는 막장 인생을 살던 조니가 '베스트 키드'의 다니엘와 비슷한 미겔을 제자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조니가 가르치는 방식은, 여전히 1980년대의 코브라 카이다. 원작과 비슷한 설정이지만 주요 인물들의 위치를 뒤바꾸는 것만으로도 유머와 긴장감이 증폭된다. 어디서 뭐하는지도 몰랐던 조니가 코브라 카이를 시작한 것을 알게 된 다니엘은 경쟁심을 느끼고 다시 가라테에 열정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조니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코브라 카이'는 악인이 주인공인 피카레스크물이 아니다. 조니는 많은 인격적 결함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심성이 착하다. 과거의 원한 때문에 다니엘과 티격태격하고 아이들에게 못되게 굴어도, 아주 나쁜 길로 빠져들지는 않고 최소한의 정의와 도덕을 지킨다. 그리고 무엇보다 순수하다는 장점이 있다. 시즌 1은 미겔과 다니엘의 딸 샘이 다니는 고등학교의 아이들이 각각 조니와 다니엘의 제자로 들어오면서 대결을 하고 2, 3시즌으로 가면 조니의 사부였던 크리스가 등장해 악역을 맡는다. 크리스도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바닥으로 추락했었지만 조니의 도움으로 코브라 카이에 돌아오고, 사악한 재능을 발휘해 모든 권력을 쟁취한다. '노 머시'를 부르짖는 크리스다운 행동이다.


'코브라 카이'는 1980년대의 추억을 가진 이들에게는 너무나도 유쾌하고 따뜻한 영화다. 과거 3부작의 익숙한 장면들을 적절하게 활용하며 지금 벌어지는 사건을 결합하고, 그 시절 배우들도 그대로 등장해 친근하게 다가온다. 다니엘과 조니가 사랑했던 여인을 연기했던 엘리자베스 슈도 3시즌에 잠깐 출연하여 추억을 상기시킨다. 대사와 유머도 재치가 넘친다. 미겔이 다니엘의 차에 탔다가 1980년대 소프트록을 듣고 좋아하며, 시카고의 노래가 좋다고 말하자 조니는 질투한다. 메탈만 듣는 조니에게 시카고는 애들 장난 같은 거니까. 그런데 '베스트 키드' 2편의 주제곡을 부른 밴드는 시카고다.

시즌을 거듭하며 조니가 주인공이면서도 다니엘의 비중이 점점 커지는 구성이지만 '코브라 카이'의 초점은 젊은 세대에게 맞춰진다. 반목하다가 화해를 한 후에도 서로를 존중하기 힘들었던 조니와 다니엘은 결국 아이들을 위해 힘을 합친다. 자신들이 배웠고 옳다고 믿는 방식을 그대로 아이들이 따르는 게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조니와 다니엘의 가라테에서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배우고 자신들의 가라테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인정하게 된다. '코브라 카이'는 10대 아이들의 성장을 중심에 두면서 40대인 조니와 다니엘 심지어 예순이 넘은 크리스의 성장까지도 함께 담아낸다.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현명해지거나 깊이가 생기지는 않는다. 아무리 나이가 들고 많은 것을 이루었어도, 언제나 자신을 돌아보며 계속해서 배우고 성장하지 않는다면 '백인 쓰레기'와 같은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코브라 카이'는 유쾌하게 보여준다.

김봉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