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경찰 적극 단속을" 권고에도… 폄훼로 얼룩진 수요시위

입력
2022.01.19 16:40
인권위 긴급구제조치 후 첫 수요시위
충돌 없었지만 보수단체 반대시위 여전

"30여 년간 쌓아온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확산하고자 했던 수요시위 의미가 훼손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19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서머셋팰리스 앞에서 1,527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수요시위)가 열렸다. 수요시위의 메카인 '평화의 소녀상'에서 70m가량 떨어진 곳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이틀 전 보수단체의 수요시위 방해 행위를 단속하라고 경찰에 긴급구제조치를 권고했지만, 수요시위 참석자들은 이번에도 소녀상 자리를 되찾지도, 반대집회의 모욕행위를 피하지도 못했다.

같은 시간 소녀상이 있는 평화로에선 보수단체 집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다만 경찰 통제로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국민행동)이 수요시위 장소 바로 옆에서 '위안부 사기 중단 촉구' 집회를 열었고, 반일행동은 소녀상 앞에서 한일합의 폐기를 주장했다. 국민계몽운동본부와 엄마부대는 소녀상 철거를 촉구하는 집회를 연합뉴스 건물 인근에서 각각 개최했다.

경찰은 인권위 권고에 따라 현장 경비 인력을 기존 2개 중대에서 6개 중대로 확대하고 중재 역할을 하는 '대화 경찰'도 4명에서 8명으로 늘렸다. 또 수요시위와 국민행동 집회 장소 사이에 미니버스를 세워 양측 접촉이 없도록 했다.

경찰은 "집회 도중 모욕행위나 명예훼손적 발언을 삼가달라. 현장에서 제지하지 않더라도 채증자료를 바탕으로 향후 사법처리될 수 있다"고 여러 차례 경고방송을 했다.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 등이 수요시위 장소로 접근하자 "오늘은 안 된다"며 제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요시위 폄훼 발언은 여전했다. 국민행동은 피켓이나 현수막에 '반일은 정신병' '흉물소녀상 철거' 등 문구를 게시했고, 현장 발언에선 "위안부는 소정의 비용을 받고 성적 서비스를 제공한 직업 여성" "일본군이 전쟁하다 말고 조선 땅에 와서 여인을 끌고 가는 게 말이 되냐" 등의 막말을 했다. 보수 유튜버들도 위안부 비하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이런 구호는 수요시위장에도 들릴 정도였다.

수요시위에선 보수단체의 훼방을 성토하는 발언들이 나왔다. 한경희 정의기억연대 사무처장은 "(공권력은) 전시성폭력의 무참한 행태를 고발했던 시민사회의 외침을,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적극 보호해주길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이나영 이사장은 성명서를 통해 종로경찰서에 △수요시위 현장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와 차별행위 완전 해소 △수요시위 방해를 목적으로 한 집회 원천 차단 등을 요구했다.

경찰은 법 테두리 안에서 집회 참여자 모두를 보호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라 현장을 관리하고 있고, 각자의 목적이 달성될 수 있도록 보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한슬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