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리웹, 클리앙, 에펨(FM)코리아, MLB파크, 오늘의유머, 82쿡…' 고백하자면, 온라인 세상을 제1의 출입처로 삼기 전까지 몇몇은 이름조차 몰랐다. 정치부에서 2012년, 2017년 두 번의 대선을 치르면서도 온라인 커뮤니티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 반 년 애를 좀 먹었다. 두 동강 난 커뮤니티 여론을 서성이다 보면 가끔 속이 뒤집어질 만큼 현기증이 났다.
건강한 공론장이 될 수도 있지. 정치에 무관심한 것보다는 낫잖아. 다독여봐도 의문은 가시지 않았다. 과연 이게 모두의 민심일까. 언론사 종사자를 제외한 주변 지인들에게 물었다.
이번 대선의 캐스팅보터 MZ세대, 만나면 정치 얘기 빼놓지 않는 정치 고관여층을 선별했건만, 10인(남녀 5명씩)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들어는 봤지만(전혀 모르겠다는 경우도) 가본 적은 없다"(8명)는 무관심형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정치색이 너무 짙어 피한다"(1명)는 적극적 회피형과 "양쪽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일베(일간베스트)부터 보배(보배드림)까지 다 본다"(1명)는 적극적 소통형은 소수였다.
이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와 거리를 두려는 건 "극단성이 싫어서"였다. 우리 편만 절대선이고, 나머지는 절대악으로 돌려버리는 '확증편향'에 빠지지 않겠다는 나름의 의지. 적극적 소통형은 말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멘털 끌려가는 건 한순간이야."
시민들은 이렇게 알아서 경계하는데, 정치인들은 너무 쉽게 혹한다.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남초(남성 이용자가 많은) 커뮤니티'의 숙원사업을 떠받든 제1야당 대선후보. 그가 적은 단 일곱 글자는, 분열과 혐오를 조장하더라도 강성 지지층만으로 선거를 치러보겠다는 '커뮤니티 대선'의 출정을 알리는 선전포고였다. 다만 그 달콤함 뒤에 얼마나 큰 함정이 도사리는지는 몰랐던 것 같다.
목소리 큰 집단이 똘똘 뭉쳐 있으면 더 세 보인다. 착각이다. 한 이용자가 온라인 여론의 허상을 꼬집으며 올린 글을 인용해보겠다. 출판사에 절판된 책을 찾는 전화가 한 달 새 4통이나 날아든다. 긴가민가하던 사장은 고민 끝에 500부를 다시 찍는다. 대박이 났을까? 딱 4부만 팔렸다. 목소리가 크다고 해서, 그걸 목소리가 많다로 해석하면 큰코다친다는 거다.
지지층의 딜레마도 있다. 시시각각 출렁이는 온라인 커뮤니티 여론에서 영원한 주군은 없다. 20대 논객 'K-를 생각한다' 저자 임명묵씨는 인터뷰 때 이런 예언을 했다. "이준석 대표는 2030 남성들의 아바타예요. '롤'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가차없이 버려질 겁니다." 집토끼가 토라질까, 전전긍긍하는 사이 산토끼는 저만치 달아난다. 멀어져 가는 숫자를 따져보니 비교 불가다. 코앞에 보이는 것만 매달리면, 더 큰 걸 놓칠지 모른다.
대선은 우리 사회에 잠복한 고질적 과제들을 한데 끄집어내 해법을 찾아가는 5년 단위 시험이다. 그런데 어려운 건 제쳐두고 지지층 입맛에 맞춘 쉬운 문제만 공략한다면, 실력은 쌓이지 않는다. 당장 연금개혁, 인구절벽, 불평등, 기후위기 같은 골치 아픈 문제는 '밈'과 '드립'에 밀렸고, 대선은 갈수록 하향평준화의 길을 걷고 있다. 그 후과를 3월 10일부터 우리 모두가 치러야 한다는 건, '커뮤니티 대선'의 가장 두렵고도 치명적인 함정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