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보고 끝까지 간다"... 완주 의지 굳어지는 안철수

입력
2022.01.19 16:00
24면

편집자주

‘송용창의 정치행간’은 의회와 정당, 청와대 등에서 현안으로 떠오른 이슈를 분석하는 코너입니다. 정치적 갈등과 타협, 새로운 현상 뒤에 숨은 의미와 맥락을 훑으며 행간 채우기를 시도합니다.


“길게 보고 끝까지 간다.”

대선 레이스의 핵심 변수인 야권 단일화에 대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측 인사들의 얘기다. 안 후보나 주변 인사들의 완주 의지가 갈수록 굳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안 후보가 18일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를 상임 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한 게 단적인 신호다. 당초 이 직위에 인명진 목사가 거론됐으나 단일화가 필요하다는 그의 의견이 안 후보 뜻과 맞지 않았다고 한다. 양당 진영 정치에 비판적이며 새로운 정치판을 만들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진 최 교수가 선대위원장 제안을 수락한 것도 안 후보의 완주 의지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단일화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라도 자강론이 요구돼 이것만으로 ‘단일화가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어느 때보다 예측 불허의 선거가 진행되는 터라 대선 레이스 막판에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누구도 예단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번 대선에서 안 후보의 의지뿐만 아니라 여러 조건 자체가 단일화 성사 여지를 좁히는 상황이다.

#1 낮은 당선 가능성 vs 역전 드라마 가능한 롤러코스터

우선 살펴볼 것은 당선 가능성이다.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이 낮은 후보에게 단일화 압력은 안팎으로 커지게 마련이다. 후보 입장에서도 선두 후보를 지지하면서 지분을 얻는 게 합리적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어느 때보다 합리적 예측을 어렵게 하는 롤러코스터 판세다. 주 단위가 아니라 아예 일 단위로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하고 조사 기관이나 방법에 따라서도 순위가 출렁이는 양상이다. 양강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에 대한 유권자들의 호감도나 충성도가 떨어져 젊은 층과 중도 층 표심이 사안에 따라 무더기로 옮겨 다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1987년 대선에서 양김이 단일화를 하지 않았던 것은 서로가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라며 “여론조사가 정착된 이후 예측이 가능해 당선 가능성이 단일화 압력 요인이 됐지만 지금은 예측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양상이 계속되면 후발 주자인 안 후보로선 막판까지 역전 드라마를 노릴 수 있다. 자질 시비에 휩싸여 지지율이 추락했던 윤 후보가 이준석 대표와 손을 잡은 이후 2030세대에서 반등이 나왔지만 아직 부인 김건희 리스크가 끝났다고 볼 수 없다. 최근에는 무속 논란까지 재차 불거져 얼음판 위를 걷는 형국이다. 아울러 TV 토론이 본격화되면 지지율이 다시 한번 출렁일 가능성도 크다. 실제 2017년 대선에서 안 후보는 대선을 코앞에 둔 TV 토론에서 ‘MB 아바타’ 발언 등으로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다. 안 후보로선 이번 대선 TV 토론을 이미지 반전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2 정권교체 실패론 vs 후보 자질 책임론

흔히 거론되는 또 다른 단일화 압력 요인은 진영과 조직의 압박이다. 안 후보의 지지율이 정체돼 있는데도 완주했다가 정권교체가 무산되면 보수 진영이 안 후보에게 온갖 책임론을 쏟아부을 수 있다. 안 후보가 15% 지지율 벽을 뚫지 못하면 결국 단일화 협상에 응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부담 요인을 염두에 둔 것이다.

하지만 안 후보는 1997년 대선 패배의 책임론을 초래했던 이인제 전 의원 경우와는 전혀 다르다. 안 후보의 정치 출발이 보수 진영이 아닐 뿐더러 보수 측에 빚진 일도 없어 책임론에서 자유롭다. 오히려 안 후보 측 관계자는 “정권교체론이 높은데도 얼마나 제1야당 후보가 못났으면 졌냐는 여론이 더 높을 것이다”라며 “만약 정권교체가 실패하면 자질이 부족한 후보를 내세운 국민의힘 책임이 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정권교체 실패 시나리오의 경우 국민의힘이 책임론의 내홍에 휩싸여 제3지대의 안 후보가 야권 개편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통상 단일화를 압박하는 것은 진영만이 아니다. 내부 구성원들도 총선 공천 등을 고려해 후보를 설득하며 물밑에서 거간꾼 역할을 하지만, 총선이 아직 2년이나 남아 있고 안 후보 주변에 단일화를 강하게 추진할 만한 이들도 거의 없다고 한다.


#3. 단일화 시너지 vs 단일화 효과 의문

단일화 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 쟁점은 단일화 시너지 효과 여부다. 예컨대 선거 막판 윤석열 후보로 단일화가 이뤄지더라도 안 후보를 지지했던 표심이 윤 후보로 흡수된다는 보장이 없다. 실제 한국 갤럽이 14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안 후보가 단일후보가 되면 윤 후보 지지자의 78%가 안 후보를 지지한다고 답했지만, 반대의 경우 안 후보 지지자 중 49%만 윤 후보를 찍겠다고 했다. 윤 후보에 대한 실망감으로 안 후보 지지율이 상승한 것을 보면 이들 유권자들이 실망한 윤 후보에게 다시 돌아가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이를 근거로 안 후보 측이 내세우는 게 ‘안일화(안철수로 단일화)’다. 단순 지지율에선 윤 후보가 앞서더라도 이재명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 안 후보가 경쟁력이 높아 압도적인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선거 막판 단일화 협상이 모색되더라도 단순 지지냐 아니면 경쟁력이냐는 여론조사 방식을 두고서도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안 후보는 2012년 대선에서도 이 문제로 호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양측이 합의하기 거의 불가능한 구조다”라고 말했다. 단일화가 시도되더라도 여론조사 방식이 아니라 큰 틀의 담판밖에 없다는 얘기다.


#4. 정권교체 vs 정치교체

물론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진영이 결집하기 마련이어서 안 후보 지지율이 10%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도 상정할 수 있다. 단일화 논의가 없더라도 보수 진영 여론에 의한 단일화가 이뤄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양강 후보의 특징 중 하나가 윤 후보는 정권교체론, 이재명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보다 지지율이 낮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젊은 층이 진영에 구애받지 않는데다 양강 후보에 대한 호감도도 낮아 진영 결집력이 과거와 같지 않은 것이다.

그동안 제3지대 입지가 극히 좁아졌지만 비호감 대선 후보 간 대결로 다시 한번 기지개를 켤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을 잡았다고 볼 수 있다. 보수의 담론이 정권교체론이라면 제3지대는 정치교체론이다. 안 후보가 설령 지지율이 떨어져 당선 가능성이 낮거나 정권교체에 훼방을 놓는다는 비난이 쏟아지더라도 완주할 수 있는 동력과 명분은 정치교체론이다. 국민의당 광주시당 위원장인 조정관 전남대 교수는 "지난해 4·7 재·보궐 선거 후 국민의힘과 합당 논의가 무산됐는데 지금 보면 그때 합당하지 않은 게 전화위복이 됐다"며 "대선이 진행되면서 새로운 정치를 원하는 이들이 늘어 우리의 존재 이유를 새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권교체론 속에서도 정치교체론의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안 후보는 질 때 지더라도 끝까지 가는 길 외에 다른 선택은 없어 보인다.



송용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