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직장’ 내 소득 불평등 이유?... 직고용 처우는 3.5점, 용역은 0.2점 불과

입력
2022.01.26 11:00
[중간착취의 지옥도, 그 후]
<27>공공기관 경영평가, 용역 처우 반영 미미
위탁 노동자 처우는 평가에 아예 반영도 안 돼

지난해 세계불평등연구소에서 한국의 상위 10%와 하위 50%의 소득격차(14배)가 프랑스(7배)의 두 배라는 발표를 했다. “서유럽만큼 부유하지만, 부의 불평등은 심각하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의 심각한 소득 불평등의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아주 세밀한 규제에서도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기업을 보자.

올해 실시되는 '2021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100점 만점 중 공기업에 직고용된 직원들의 '보수 및 복리후생'은 3.5점을 차지한다. '조직·인사 일반(삶의 질 제고)'과 '노사관계' 항목도 각각 2점이며, '총인건비 관리'는 3점이다.

그러나 '비정규직·간접고용의 정규직 전환 실적'은 고작 0.5점이다. 중간착취 근절과 간접고용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마련된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 준수' 여부도 0.2~0.4점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배점은 범위 내에서 피평가기관이 정한다. 보호지침에는 수많은 준수 의무 사항들이 있지만, 평가에선 고작 0.2점 안에 욱여넣어야 하는 셈이다. 지침은 용역업체뿐 아니라 자회사 소속으로 전환된 청소·경비노동자에게도 적용된다.

물론 직고용 직원 관련 지표엔 '직무급제(직무 난이도 등에 따른 임금체계) 전환 성과'도 포함되니 무조건 처우를 높이라는 내용만 담긴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배점이 높은 만큼 합리적 관리를 하고 신경을 쓴다는 뜻이 된다. 또 인건비 인상률을 제한하는 총인건비 항목은, 자회사 소속으로 전환된 용역노동자들의 임금을 '용역 시절'과 다를 바 없게 묶어두는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정규직들이 한시적 손해를 감수하고 자회사 직원들의 임금을 더 높이면 되지만 현실에선 기대하기 어렵다.

더구나 2019년 12월에 마련된 ‘민간위탁 노동자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은 아예 평가지표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가스검침원, 콜센터 직원 등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민간위탁 노동자는 20만 명에 이른다. 이 가이드라인은 중간착취 방지를 위해 공공기관에서 노무비 전용계좌를 개설하고 민간업체에 주는 다른 비용과 분리해, 임금 지급을 관리하도록 한다.

해당 가이드라인 발표 당시,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용역근로자 보호지침은 4개 분야 노동자로 한정적이지만, 민간위탁의 경우 종사자 수 20만 명, 수탁기관이 2만여 개, 수탁사무 종류도 1만여 개나 되기 때문에 종류가 다양하고 복잡해 경영평가에 반영하는 게 쉽지 않다"고 밝혔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애초 평가에서 배제된 이유에 대해) 옛날 내용이라 자료가 없다"고 답했다.

민간위탁 종류가 다양하긴 하지만, 사실 평가대상이 되는 공기업, 준정부기관 등도 업무 자체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고용부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모두 성격이 다른 기관의 비전·경영전략·성과 등에 대해 면밀히 평가하는 상황에 비하면, 민간위탁 가이드라인 준수를 평가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간단하다. 또 역으로 보면 20만 명에 이르기 때문에 그만큼 더 중요하기도 하다.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는 영향력이 막대하다. 6등급(S,A,B,C,D,E)으로 성적표를 받게 되며 인사조치, 성과급, 예산 반영 등에 활용된다. 부진한 기관은 경영개선 계획 제출, 기관장·상임이사에 대한 경고나 해임 건의 등 후속 조치가 이루어진다.

노동 전문가인 권영국 변호사는 “(경영평가) 지표가 바뀌면 공기업은 당장 바뀔 수밖에 없다”며 “(보호지침에 대한) 배점을 강화하면 사실상의 구속력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기관 평가 지표 자체를 새로 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배점을 늘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경영 효율성 평가가 결정적 역할을 하는 현 체제에선 점수 조정에도 한계가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책임 등을 전면화시키는 방식으로 평가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나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