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이 17일 "더 이상 이번 대선에 대해 의견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며 3월 9일 대선이 끝날 때까지 일종의 정치적 묵언수행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활발히 글을 올린 지 반나절도 안 돼 돌연 '침묵 선언'에 나선 것이다. 사실상 대선 관련 공개 활동을 접겠다는 뜻으로, 홍 의원과 '원팀 행보'를 기대했던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대선 레이스에서 이른바 '훈수정치'로 정치적 존재감을 뽐내온 홍 의원은 전날 저녁부터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페이스북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현안 논평을 이어왔다. 가장 최근에 올라온 건 윤석열 후보 배우자 김건희씨의 '7시간 통화' 녹취록 방송과 윤 후보 선거대책본부(선대본)에 무속인이 활동하고 있다는 보도를 거론하며 쓴소리를 적은 글이었다. 그러나 현재 두 개의 게시글은 모두 삭제된 상태다.
홍 의원의 갑작스러운 침묵 선언은 그가 만든 소통 플랫폼 '청년의꿈'을 통해 알려졌다. 홍 의원은 '홍문청답'(홍 의원이 질문을 던지고 청년들이 답하는) 코너에 '오불관언'(吾不關焉·어떤 일에 상관하지 않고 모른 체한다는 표현)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더 이상 이번 대선에 대해 제 의견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김건희 리스크가 무색해지고, 무속인 건진대사 건도 무사히 넘어갔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홍 의원은 이어 오불관언 한자의 오기(誤記)를 바로잡은 제목으로 다시 글을 올렸다. "대선이 어찌 되든, 제 의견은 3월 9일까지 없다. 오해만 증폭시키기 때문에 관여치 않기로 했다"며 대선 관련한 언급을 하지 않겠다고 재차 못 박았다.
윤 후보 배우자와 선대본을 비판한 논평을 내놓은 지 얼마 안 된 느닷없는 침묵 선언에 지지자들 사이에선 여러 말들이 나왔다.
특히 홍 의원이 "오해만 증폭시키기 때문에"라고 언급한 대목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일부 열혈 지지자들은 김씨가 경선 과정에서 홍 의원을 적극적으로 견제에 나선 것이 '트리거'가 됐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침묵 선언에 대한 반응은 다양했다. "홍 의원이 윤 후보와 부인을 비판하자 내부 총질이라고 압력을 가한 것 아니냐"며 국민의힘에 발끈하거나, 윤 후보의 대선 승리 가능성이 낮다고 주장하며 "현명한 판단",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응원하는 의견도 있었다.
홍 의원은 전날 '7시간 통화' 녹취록을 전한 MBC 방송 직후 페이스북에 "참 대단한 여장부"라고 김씨를 비틀며 그가 쏟아낸 발언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 과정에서 홍 의원은 "충격"이라는 단어를 무려 네 번이나 사용했다. 그는 "김종인씨가 먹을 게 있으니 왔다는 말도 충격,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보수들은 바보라는 말도 충격, 돈을 주니 보수들은 '미투(Me too)'가 없다는 말도 충격일 뿐만 아니라, 미투 없는 세상은 삭막하다는 말도 충격"이라고 적었다.
'7시간 통화' 녹취록에 공개된 김씨 발언 중에는 홍 의원을 겨냥한 날 선 공격과 견제도 있었다. 김씨는 지난해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서 홍 의원의 서울대 토크콘서트 일정에 갈 것이라는 통화 내용 속 기자 이 모씨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해봐라. 홍준표 까는 게 더 슈퍼챗(유튜브 채널의 실시간 후원금)은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홍 의원은 "'틀튜브(어르신을 의미하는 '틀니'와 유튜브를 합친 말)들이 경선 때 왜 그렇게 집요하게 나를 폄훼하고 물어뜯고 했는지 김씨 인터뷰를 잠시만 봐도 짐작할 만하네요. 다른 편파 언론들은 어떻게 관리했는지 앞으로 나올 수도 있겠네요"라고 불쾌한 심경을 내비쳤다.
홍 의원은 이날 오전에는 윤 후보 부부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무속인이 선대본부에 전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세계일보 보도에 대해 "최순실 사태처럼 흘러갈까 걱정스럽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홍 의원은 "자칭 '국사'인 무속인 건진대사가 선대위 인재 영입을 담당하고 있다는 기사도 충격"이라며 "아무리 정권교체가 중하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않으냐'라는 말들이 시중에 회자되고 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