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향용(41) 감독은 정우성을 2014년 서울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무명이나 다름없던 독립영화 감독에게 먼저 연락한 건 정우성이었다. 최 감독이 그해 낸 단편 영화 '고요의 바다'를 인상 깊게 본 정우성이 장편 제작에 욕심을 냈다고 한다. 두 사람은 그 후 7년 뒤 '고요의 바다'를 시리즈 드라마로 만들어 넷플릭스에 공개했다. 극심한 가뭄으로 물이 부족해진 가까운 미래 지구를 배경으로 달 기지에 남겨진 정체불명의 샘플을 회수하라는 지시를 받은 대원들이 임무 수행 중 겪는 의문의 사건을 그린다.
이런 내용의 드라마는 올 정초 넷플릭스 비영어 TV 부문 글로벌 주간(2021년 12월 27일~2022년 1월 2일) 순위 정상에 올랐다. "처음엔 '고요의 바다'를 장편 영화로 만들 계획이었어요. 4년을 준비했는데 중간에 제작이 중단됐죠. 이렇게 전화위복이 됐네요." 14일 이메일로 만난 최 감독의 얘기다.
'물이 없는 달에서 사람들이 익사한다.' 최 감독은 이 아이러니한 아이디어를 굴려 '고요의 바다'를 만들었다. 극에서 대원들은 달에서 물을 발견한다. 월수(月水)는 인간의 피가 닿으면 무한증식하고, 그 물에 닿은 인간은 익사한다. 환경 오염으로 물 부족이 심각해지는 지구에서 월수는 구원이자 공포다. 최 감독은 "자원이 부족해지면 가장 먼저 생계형 자영업자와 빈곤층이 피해를 받고 결국 빈부격차가 커지며 계층 갈등이 심화한다"며 "그게 이 시대 자본주의의 모습이라 지구에서의 물 사용 등급제 설정을 녹였다"고 말했다. '고요의 바다'에선 어떤 등급을 받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쓸 수 있는 물 사용량이 달라진다.
'고요의 바다'는 인간성에 질문을 던져 기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SF와의 차별화로 주목받았지만, 우주의 중력을 고려하지 않은 듯한 비현실적 연출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최 감독은 "고증이 부족했던 지점도 있다"며 "하지만, 발해기지 내부를 모두 저중력으로 표현하기엔 현실적으로 제작이 불가능하기도 했다"고 답했다.
최 감독은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출신이다. 졸업 작품으로 '고요의 바다'를 내놨고, 2006년엔 '초크'란 5분짜리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초크'는 어둡고 칙칙한 감옥에서 죄수가 뭐든지 그리면 실제가 되는 분필을 손에 넣고, 그 변화를 보여준다. 최 감독은 달 기지('고요의 바다')와 감옥('초크') 등 고립된 곳에 놓인 인간의 심리 변화를 집요하게 파고 든다. 그는 "앨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서스펜스를 불안과 긴장, 기대감의 확장이라고 설명했다"며 "최근 로봇을 소재로 한 만화 '플루토'를 다시 봤는데 '인간을 정의하는 걸 뭘까'라는 질문이 내 관심사"라고 설명했다.
'고요의 바다' 시즌2 제작은 미정이다. 극 중 대원들처럼 우주로 간다면 최 감독은 기지 내 간이침대 옆에 무엇을 붙여놓을까. "제게 소중한 사람들 사진을 붙여놓지 않을까요? 삶의 의미를 자주 상기시켜줘야 될 것 같아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