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웨이' 고수 北, '제재'까지 더한 美, '체념' 기우는 정부

입력
2022.01.1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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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이중기준 철폐' 美 '무조건 대화' 공전
"올림픽뿐 아니라 한반도 현안 전부 막혀"
정부 "文 임기 내 대화 재개 어렵다" 비관

4개월 남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 끝까지 한반도에 ‘평화’를 이식하겠다던 정부 의지가 퇴색하고 있다. 북한은 대화에 응하기는커녕 연이은 미사일 도발로 ‘마이웨이’를 고수하고 있고, 미국도 ‘추가 제재’까지 단행하며 원칙론으로 일관해 여간해선 강고한 교착 국면을 깨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사실상 마지막 카드로 제시한 ‘종전선언’마저 악재가 돌출하면서 주변 정세를 반전시킬 새로운 ‘출구전략’도 없는 형편이다.

카드 모두 소진... '교착' 굳어진 한반도

복수의 정부 소식통은 13일 “남북대화나 북미협상 재개를 위해 우리가 꺼낼 수 있는 추가 선택지가 마땅치 않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북한이 종전선언과 대북 인도적 지원을 고리로 한 한미의 유화 제스처는 외면한 채 국제사회 제재 대상인 탄도미사일을 올 들어 벌써 두 번이나 쏘아 올려 한국이 외교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도 무력감을 내비치긴 했다. 정 장관은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기대했던 남북관계 개선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에 정부 관계자는 “올림픽뿐 아니라 당분간 남북을 포함한 전체 외교안보 현안의 출구를 찾기 어렵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북한의 잦은 무력시위에도 끝까지 인내심을 보이던 청와대가 11일 미사일 발사를 겨냥, “강한 유감”을 표하는 등 대응 수위를 끌어올린 것도 꽉 막힌 한반도 국면과 무관치 않다.

정부 안에서 점증하는 비관론은 북한이 내보인 ‘메시지 형식과 수위’에 기반한다. 지난해 10월 이후 남북ㆍ북미관계에 침묵하다 발신한 첫 대외 메시지가 미사일 연속 도발이었다. 그것도 한미의 요격 임계점을 넘어선 ‘극초음속 미사일’이라고 북한은 주장한다. 대화 테이블 마련을 위해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도 다 소진됐다. 종전선언만 봐도 미국과 문안에 합의하고 북한에 제안을 건네는 단계까지는 갔으나, 북한이 묵묵부답이니 기다림 외에는 딱히 대안이 없는 처지다.

美 '추가 제재'까지... 정부 "당분간 대화 힘들어"

결국 남은 방법은 북미 어느 한쪽이 양보를 하는 것뿐인데, 이 역시 전망이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1년 가까이 정해진 시간표에 따른 일상적 군사훈련인 만큼 ‘이중기준’을 거두라는 북한과 ‘조건 없는 대화’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은 미국의 요구 사이에 교집합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한 소식통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금 명분이 필요하다”면서 “미국이 작은 양보라도 해야 관심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외려 북한의 거듭된 무력도발은 미국의 추가 제재를 부르며 대립 구도만 더 선명해졌다. 미국은 12일(현지시간) 북한의 무기개발에 관여한 북한 국적자 6명 등을 금융제재 명단에 추가했다.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기존 대북제재에 대상을 추가해 달라고 요청해 둔 상태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달에도 ‘인권탄압’을 이유로 첫 대북제재를 단행해 미국이 ‘강대강’ 대결의 상징인 제재 모드로 돌아선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작지 않다.

외교가에선 일련의 행보로 볼 때 미 외교전략 목록에서 한반도는 확실히 후순위로 처졌다고 본다. 남중국해와 우크라이나 문제 등 중국ㆍ러시아 견제에 전력을 쏟느라 북한과는 적극적 소통 대신 처벌 방어막을 쳐 ‘현상 유지’만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11일 브리핑에서 ‘대북 접근법을 변경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외교와 대화가 실행 가능한 선택지”라며 기존 대북정책 유지 방침을 분명히 했다.

정부도 현재로선 상황 악화를 막는 것을 최선책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북한이 지난해 1월 제시한 ‘국방발전 5개년 계획’의 5대 과업 중 하나에 불과해 앞으로도 핵잠수함 등 무기체계 진전을 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는 “북한식 ‘전략적 인내’도 점차 한계에 다다를 것”이라며 “상시 도발이 굳어지면 미국 역시 고강도 제재에 나설 수밖에 없어 자칫 2018년 이전 ‘한반도 위기’가 재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준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