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은심 여사 별세에 서울서도 시민들과 정치인 추모 물결

입력
2022.01.10 21:00
이한열장학금 청년들 자원봉사 활동
"궂은 일 마다 안 해" "노동자 아픔 공유"
서울 분향소 13일 9시까지 운영 예정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20대였다. 항쟁에 직접 참여했다. 엄마가 돼보니 자녀가 먼저 죽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배은심 여사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그냥 보낼 수 없어서 직접 왔다."
김경란씨(54·서울 양천구)

10일 서울 마포구 이한열기념관 3층에 마련된 고(故)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여사 분향소엔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고인과 함께 민주화운동을 했던 동지들과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경험을 공유하는 시민들이 먼저 찾았다. 정치권에선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설훈 의원 등 민주당 소속 의원 10여 명이 조문했다.


이한열 장학금 받은 청년들 자원 봉사

이날 분향소에는 이한열기념사업회가 2009년 3월부터 지급해 온 이한열장학금을 받았던 청년들이 상주를 대신해 조문객을 안내하는 등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이한열기념사업회에 따르면 현재까지 학생 271명이 3억7,230만 원의 장학금을 받았다.

2011년 장학금을 받았던 최진리(37)씨는 "힘들 때 장학금을 받았다. 배 여사가 장학생 수여식 때 오셔서 학생들과 만나기도 했다"며 "장학생들이 깨어 있는 시민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강대를 다니며 2019년에 장학금을 받았다고 밝힌 김평강(26)씨는 "먹먹하지만 슬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그분 뜻을 이어가는 분들이 있으니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분향소엔 배 여사를 기리는 마음을 담은 게시판도 마련됐다. 조문객들은 "이한열 열사 뜻을 이어 민주화를 소망한 배은심 열사의 삶을 잊지 않겠다" "어머니, 보고픈 아드님과 행복하세요" 등의 글을 남겼다.

민주화운동 동지들 "좋은 일, 궂은 일 마다하지 않아"

고인과 민주화운동을 함께했던 이들의 조문도 이어졌다. 전태일기념사업회에서 활동한 윤명선(77)씨는 "이한열 열사 사망 후에 평범한 어머니에서 민주화운동의 산증인으로 바뀌셨다"며 "30년 이상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거리 투쟁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씨는 "민주유공자법도 쟁취하고 가르침도 주셔야 하는데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전국민족민주 유가족협의회(유가협) 후원회장을 지낸 청화 스님은 "배 여사는 이한열 삶을 대신 살았던 분이다. 그분을 민주주의의 어머니로 생각하고 있다"며 "민주화운동에서 희생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나. 앞으로 민주주의가 절대 후퇴하지 않고 발전되길 바라는 마음이다"고 강조했다. 최수종 전 5·18민주화운동 서울기념사업회장은 "여기저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참석하셨는데, 볼 때마다 마음이 짠했다"고 전했다.

고인과 별다른 인연이 없지만 6월 민주항쟁을 기억하는 시민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경기 광명시에서 온 신영옥(65)씨는 "아드님이 최루탄을 맞고 돌아가셨을 때 관에 쓰러져서 오열하던 모습이 기억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민주당 "생전 추진했던 민주유공자법 제정해야"

민주당은 고인이 생전에 추진했던 민주유공자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윤호중 원내대표는 조문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배 여사는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모든 사람들의 어머니"라며 "지난해 12월 초 유가협의 국회 앞 농성에서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당부했다"고 말했다.

설훈 의원은 "배 여사가 유가협 조직을 잘 이끌어가면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배 여사는 1998년 유가협 회장을 지내면서 422일간의 국회 앞 천막투쟁을 통해 민주화운동보상법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이끌어냈다.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가장 선두에 서서 민주주의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이라며 "억울한 죽음과 노동자의 아픔에 함께하셨다"고 말했다.

이한열기념사업회는 고인의 삼우제가 치러지는 13일 밤 9시까지 분향소를 운영할 예정이다.


연세대 한열동산서 '추도의 밤' 열려…"고인의 바람 이어가도록 최선"

이날 오후 7시 서울 마포구 연세대 내 한열동산에서는 '추도의 밤'이 열렸다. 200여명의 추도객이 한열동산을 가득히 메웠다. 추도객들은 이 열사 기념비 위에 올려진 배 여사 영정에 하얀색 국화꽃을 헌화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지선 스님은 이원영 상임이사가 대독한 추도사를 통해 "배 여사는 아들 이 열사가 못다한 꿈을 이루고자 한평생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집회 시위 현장이면 전국 어디든 찾아가 이 땅의 민주주의 확산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희생되신 분들이 국가 유공자로 정당하게 인정받는 것을 바라신 고인의 마지막 바람이 이뤄지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도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병언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 이사장은 "처음은 이한열의 어머니로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전국의 현장에서 당신 자신이 민주주의 활동가로 살아갔음을 저희가 목격했다"며 "어떻게 어머님의 뜻을 이어갈지 고민이다. 작게 나마 모여 어머님에 대한 되새김질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김도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