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년 1월 12일 '미군에 의한 피란민 사살'… 미, 노근리 양민 학살 인정

입력
2022.01.12 05:30
2001년 1월 12일 
당초 사건 자체 부인하다 증언·증거 자료 쏟아져 
클린턴 미 대통령 "유감"성명, 미 정부 배상은 불가

편집자주

한국일보 DB 속 그날의 이야기. 1954년 6월 9일부터 오늘날까지, 한국일보 신문과 자료 사진을 통해 '과거의 오늘'을 돌아봅니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7월 25일 미군의 소개명령으로 4번 국도를 따라 피란 가던 주민들이 미군 유도에 따라 철로로 올라섰다. 곧이어 미군기가 포격을 시작했다. 피란민들은 철로 아래 쌍굴로 황급히 피신했다. 미군의 무차별 기관총 사격이 이어졌다. 사격은 29일 오전까지 이어졌다. 3박 4일, 그곳에서 미군의 총격에 250~300명이 죽었다.

사건이 묻히지 않기 위해 유족과 피해자들은 끊임없이 목소리를 냈다. 유족 정은용씨는 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하고, 대책위원회를 꾸려 정부 곳곳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그 50여 년, 누구도 답을 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1999년 9월 29일, 미국 AP통신이 이 사건을 보도하며 세계가 이들의 목소리를 듣게 됐다. 그리고 마침내 2001년 1월 12일, 미국 군 통수권자인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이 이를 인정하고 유감(Regret)을 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사과(Apology)가 아니었고, 보상도 불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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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성, 항공폭격, 사격명령 등 주요 쟁점 결론 내리지 않고 모호하게 조정

미국이 전쟁 중 발생한 미군에 의한 양민 학살행위에 대해 실체를 인정하고 군 통수권자인 미국 대통령이 유감 성명을 발표한 것은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이 처음이었다. 곤혹스러운 입장의 미국은 노근리 사건의 실체는 인정하지만, 전투의 와중에 빚어진 '불행한 사고'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당시 공동발표문을 보면 "절박한 한국전쟁 초기에 수세적인 전투상황 아래서 강요에 의해 철수 중이던 미군이 1950년 7월 마지막 주 노근리 주변에서 수 미상의 피란민을 살상하거나 부상을 입혔다"고 밝혔다. 그리고 '미 공군의 피란민 공중공격 지침을 명기한 미 제5공군 로저스 대령의 메모', '사건 당일인 1950년 7월 26일 영동지역으로 출격한 제5공군 항공 작전 지침' '제1기병사단의 피란민 전선 통과 저지를 위한 사격 지침' 등 노근리 사건이 미군에 의한 의도적인 살상사건임을 입증할 만한 정황 증거 자료들을 포함했지만 발포 책임자 등에 대한 결론은 내리지 않고 모호하게 조정했다.

양국은 사후 대책과 관련해서도 공식적인 배상이 아닌 미국 정부 예산으로 영동군 또는 노근리에 100만 달러 규모의 추모비를 건립하고, 75만 달러의 장학기금을 조성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피해 주민들은 크게 실망했고, 시민단체들은 "기만적 사과" "배신감" 등의 용어를 써가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당시 19개 유족회와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한 범국민위원회'는 "미국은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의혹이 제기된 모든 지역에 대해 한국 정부, 피해자 가족들과 공동으로 철저히 진상을 조사하고, 사죄와 합당한 배상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004년에는 '노근리 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이후 정부는 2005년과 2008년 두 차례 조사를 토대로, 노근리 사건 사망자는 226명이고 유족은 2,240명이 발생한 것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유족회에서는 "피란민 중 일부가 조사에서 빠졌다"며 추가 조사를 요구했다.

이후 2021년 9월 21일 국회에서 노근리 사건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 개정안에는 1년 이내 추가희생자 심사, 법인에 대한 지원, 희생자 및 유족의 권익 보호, 트라우마 치유사업 시행 등 그동안 노근리사건 유족들이 요구했던 사항이 다수 반영됐다. 법안의 시행일은 2022년 4월 20일이다.

노근리 사건 일지

1950.7.25~29 미군의 소개명령으로 4번 국도를 따라 피란 가던 주민들이 미군 유도에 따라 철로로 올라섰다가 미군기의 포격을 받음. 철로 아래 쌍굴로 황급히 피신한 피란민들에게 미군 기관총 사격. 사격은 29일 오전까지 이어졌고 250~300명이 죽음.

1960.10. 유족 정은용씨가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기각당함.

1994.6. 피해자가 중심이 돼 노근리 사건 대책위원회 꾸림. 정부 요로에 진정서와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모두 답변 없음.

1999.9.29 미국 AP통신이 노근리 사건을 보도, 세계적 이슈가 됨.

1999.10.1 클린턴 미 대통령이 진상 규명 지시, 김대중 대통령도 하루 뒤에 진상 규명 지시.

2000.7.26 미군 양민학살현장인 쌍굴에서 '노근리 사건 희생자 50주년 위령제'가 열림.

2001.1.12 클린턴 대통령이 유감(Regret)의 뜻을 담은 성명서 발표, 한미 공동 진상조사 결과 발표. 미국은 노근리 사건은 이것으로 끝났다고 사실상 선언. 피해자들은 사과 내용이 미흡하고 조사 내용이 왜곡됐다며 수용 거부.

2001.4. 외교통상부와 피해자 간담회가 있었지만 양측 입장만 확인. 이후에도 수 차례 있었지만 마찬가지.

2002.2. 노근리 사건 가해미군이 피해자 서정갑씨에게 속죄 편지를 보냄.

2002.4. 미 미시간대 학생들이 미정부에 사과와 진상 규명 요구하는 청원서 제출.

2002.11. 노근리 사건 특별법 국회 청원 접수.

2003.4. 노근리 다리가 등록문화재로 지정 예고.

2003.6.30 노근리 쌍굴다리 등록문화재로 등록(59호).

2003.7.26 노근리 사건 53주기 추모행사가 열림.

2004.3.5 노근리 사건 특별법(노근리 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

2005.5.23 노근리사건 희생자심사 및 명예회복위원회, 노근리 사건 희생자 218명ㆍ유족 2,170명 확정.

2011.10.27 노근리평화공원 준공식.

2021.7.28 김부겸 국무총리 정부 차원 '첫 공식 사과'.

2021.9.28 노근리 사건 특별법(노근리 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전부 개정안 국회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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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성 기자
자료조사= 김지오 DB콘텐츠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