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개발사업을 주도한 화천대유가 꾸린 초호화 고문단에 프로바둑기사 9단인 국수(國手) 조훈현(69) 전 미래한국당 의원까지 포함됐던 사실이 확인됐다. 바둑계 거목인 조 전 의원이 부동산개발업체에 고문으로 이름을 올린 이유는 무엇일까.
9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조 전 의원은 지난해 5월 초 화천대유와 2년간 연봉 3,000만 원의 고문 계약을 체결했다. 주로 법조계 고위직 출신과 유명 정치인을 고문으로 영입한 화천대유가 조 전 의원을 고문단에 합류시킨 사실이 알려지자 의아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조 전 의원이 화천대유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는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로부터 걸려온 전화에서 비롯됐다. 김씨는 조 전 의원에게 ‘바둑계를 위해 순수하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밝히며, 화천대유 직원을 보내 조 전 의원과 고문 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김씨가 조 전 의원을 고문으로 데려온 데에는 앞서 화천대유와 1억 원 상당의 고문 계약을 체결한 원유철 전 미래한국당 대표의 역할이 컸다. 화천대유 주변인들에 따르면, 김만배씨와 조 전 의원은 서너 차례 만남을 가졌을 뿐 막역한 사이는 아니었다. 원 전 대표가 고교 동창인 김씨에게 조 전 의원을 살펴달라고 부탁하면서, 조 전 의원이 화천대유 고문으로 재직하게 됐다.
조 전 의원이 정계에 진출한 것도 30년 가까이 친분을 쌓아온 원 전 대표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원 전 대표는 20대 국회 기우회(棋友會·바둑 동호회) 회장을 맡을 정도로 바둑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던 원 전 대표는 자신이 직접 나서 조 전 의원을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영입했다.
조 전 의원이 화천대유와 고문 계약을 체결할 즈음 김만배씨는 조 전 의원에 대한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다. 김씨는 지난해 3월 조 전 의원이 2015년에 낸 책을 인용해 '생각은 반드시 답을 찾는다'라는 칼럼을 머니투데이에 기고했다. 해당 칼럼은 대장동 사건이 터지기 전 김씨가 마지막으로 기고한 글이다. 김씨는 ‘조 전 의원 책을 읽으면서 그에 대한 깊은 흥미와 존경이 생겼다’고 밝혔다. 김씨는 두 달 뒤 조 전 의원을 화천대유 고문으로 영입했다.
조 전 의원은 그러나 화천대유 고문 재직 당시 대장동 개발사업과 관련한 활동은 하지 않았다. 대장동 사업과 무관한 바둑계 관련 논의를 한 게 전부였다. 그러다가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이 불거지자, 지난해 10월쯤 화천대유 측 요청으로 조 전 의원과 화천대유 사이의 고문계약은 없었던 일이 됐다.
조 전 의원은 한국일보 통화에서 “바둑계 관련 논의를 하던 중 대장동 사건이 터지면서 논의 자체가 흐지부지됐다”라며 “대장동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김만배씨가 연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