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미국인 이혼율이 지난 50년 사이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지난해 미 인구조사국이 전했다. 한해 결혼 1,000건당 이혼 건수가 14.9건으로, 1970년의 15.0건보다 비로소 적어진 거였다. 미국 이혼율은 1960년 9.2건에서 1980년 22.6건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가 80년대 이후 완만히 줄었다. 최근 코로나 팬데믹 락다운과 가계 부담 등으로 가정폭력 사례가 늘고 있지만 그게 이혼율의 추세적 하락을 반전시키지는 못하리란 전망도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기혼자 58%는 팬데믹 이후 배우자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오히려 높아졌다고 답했고, 약 절반은 결혼 생활이 보다 충실해졌다고 밝혔다.
미국인 결혼-이혼의 거시적 추세는 OECD 국가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인구 1,000명당 이혼 건수 즉 조이혼율(粗離婚率)로 집계하는 한국의 경우 1970년 0.4였던 조이혼율은 2000년대 3.4로 정점을 찍은 뒤 점차 낮아져 2019년 2.2를 기록했다. 'World Population Review'가 밝힌 2021 국가별 조이혼율 순위에서 미국은 16위(2.5), 한국은 27위(2.1)였다.
70년대 이후 이혼이 급증한 주된 원인은 페미니즘 운동과 사회 변화에 따른 여성 경제력 및 인권 신장이다. 이혼율 하락의 이유도 결혼의 결속력이 강해진 덕이 아니라 비혼 만혼 등으로 결혼 건수 자체가 줄어든 탓이다. 70년 미국 미혼 성인 1,000명당 결혼 건수는 85.9였지만 2010년 35.1로 격감했고, 2019년에는 33.2였다. 한국 통계청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결혼은 21만 4,000건으로 전년 대비 10.7% 감소했고, 이혼은 10만 7,000건으로 3.9% 줄었다.
결혼-이혼 추세와 별개로, 미국이나 한국이나 결혼 커플의 약 절반은 이혼 또는 별거로 관계를 끝맺는 게 현실이다. 미국 초혼 커플의 이혼 비율은 41%, 재혼은 60%, 세 번째 결혼은 73%였다. 법과 제도는 여전히 결혼-가족의 형식과 가치를 전근대적 위상으로 떠받치고 있지만, 현실에서 결혼은 이미 생애의 유의미한 여러 선택지 중 하나가 됐고, 이혼 역시 부정적 평가와 인식을 재게 벗는 중이다.
저 거대한 인류학적 변화와 문화-이데올로기적 저항에, 개인으로서 가장 도드라지게 개입한 이 중 한 명이 사회심리학자 콘스턴스 아론스(Constance Ahrons)였다. 그는 이혼율이 사회병리적 이슈로 뜨겁게 부각되던 1970년대부터 이혼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맞서 '좋은 이혼(Good-Divorce)'의 가능성과 조건에 주목했고, 이혼 당사자가 겪는 열패감과 위축감, 또 이기심으로 인해 자녀들을 불행에 빠뜨렸다는 죄의식의 많은 부분이 전근대적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혼을 터부시-죄악시하는 집단-개인의 인식이 역설적으로 건강한 결혼생활을 억압한다는 사실을 연구 논문과 저서를 통해 제시하며, 불행한 결혼생활의 건강한 대안으로서의 이혼의 가치와 조건-절차 등을 이론적-현실적으로 연구했다. 그는 숱한 대중 강연 등을 통해 이혼을 선택한 이들의 용기를 격려하며, 다양한 분야 전문가 집단을 꾸려 이혼 과정 및 이후 자녀와 당사자들을 위한 상담 및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종교단체 등 보수 사회는 그를 이혼을 조장하고 가정-사회를 파괴하는 원흉처럼 비난했지만, 그는 "나는 결혼 반대론자도, 이혼 권장론자도 아니"며, 다만 이혼 역시 결혼처럼 사회가 보장한 제도적 장치이자 개인의 권리란 자명한 사실을 부각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결손 가정(broken family)' '편부모 가정' 등 부정적인 말들을 '중핵가정(binuclear family)'이란 용어로 대체하며 '좋은 이혼'의 가치를 부각한 콘스턴스 아론스 뉴욕대 사회학과 명예교수가 별세했다. 향년 84세.
뉴욕 브루클린에서 가전제품 가게를 운영하던 러시아 이민자 아버지와 폴란드 이민자 어머니의 딸로 태어난 그는 뉴저지 웁살라대 2학년이던 19세에 법학과에 다니던 남자와 결혼하면서 휴학, 잇달아 딸 둘을 낳았다. 결혼 생활과 자녀 양육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던지 그는 불안 증세로 신경안정제를 처방 받아 복용했다고 한다.
1963년 베티 프리댄의 책 '여성의 신비'는 그의 개인적 삶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에버그린 주립대 교수 스테파니 쿤츠는 프리댄의 책이 미친 영향을 분석한 책 'A Strange Stirring(2011)'에 "따귀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는 아론스의 말을 인용했다. 아론스는 "그 책을 읽고 비로소 내 문제가 나의 정신적 결함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책을 다 읽자마자 약을 내다버리고 곧장 대학에 복학했다고 말했다. 그는 64년 대학을 졸업(심리학)한 뒤 위스콘신 매디슨대에서 석사(사회복지)와 박사(심리상담) 학위를 받고, 모교 교수로 일하며 대학 내 '위스콘신 가족문제 연구소'를 설립해 이끌었다.
그는 56년과 69년 두 차례 결혼-이혼했다. 1년여 만에 결딴난 첫 이혼 땐 자녀 양육권 등을 두고 꽤나 거친 시련도 겪었다. '책임을 묻지 않는 이혼(No-Fault Divorce)'이 인정되지 않던, 즉 재판 이혼시 커플 중 한쪽의 외도나 폭력, 불성실 등 책임을 입증해야만 이혼을 인정받을 수 있던 때였고, 재판 과정에서 커플은 서로를 흠집내기 위해 과장과 거짓도 일삼기 일쑤였다. '책임을 묻지 않는 이혼'은 1969년 캘리포니아주가 처음 도입해 70년대 미국 모든 주가 채택했다.
첫 딸인 제리 콜사르(Geri Kolesar)는 "어머니의 첫 이혼 경험이 이혼 문제에 천착하게 된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70년대 이혼 문제는 이미 미국 사회의 주요 이슈 중 하나였고, 페미니즘 백래시의 주요 논거 중 하나이기도 했다.
아론스는 미국 정신보건원(NIMH)의 지원을 받아 77년 뉴저지주 데인(Dane)카운티의 이혼 커플 98쌍을 무작위로 선정해 커플과 자녀를 상대로 20여 년간 총 4차례, 이혼 원인과 과정, 문제점 등에 대해 집중 인터뷰했다. 5년 프로젝트였던 첫 연구에서 그는 상당수 커플이 사회 통념과 달리 자신들의 이혼을 긍정적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의 연구는 이혼율 감소의 비결이 아닌 '좋은 이혼'의 메커니즘 연구로 선회했다.
94년 출간한 대중서 '좋은 이혼(The Good Divorce)'은 이혼을 했거나 고려 중인 이들의 필독서처럼 읽혔다. 그는 오프라윈프리 쇼, 투나잇쇼, NPR 등 토크쇼와 대중 강연을 통해, 이제는 상식이 된 이혼의 긍정적 가치와 조건, 예컨대 불행한 결혼생활보다는 우호적-협력적인 이혼이 커플뿐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정서적으로 나은 선택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또 이혼 재산 분할과 자녀 공동 양육, 홀로서기의 경제적 정서적 조언 등을 위한 전문가 단체를 설립해 운영했다. 한마디로 그는 이혼이 아이들을 망치고, 가정과 사회를 훼손한다는 오래된 '신화'를 허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물론 21세기인 지금도 이혼의 부정적 낙인은 말끔히 지워지지 않고 있다. 2014년 영국의 한 로펌이 이혼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1/3은 이혼을 개인적 삶의 실패 사례로 여겨 억지로 결혼생활을 지속했다고 답했고, 이혼 후 일상적 정서를 회복하는 데 평균 4년이 걸렸다고 밝혔다. 응답자의 약 절반은 '결혼 파탄'으로 인해 많건 적건 삶이 훼손됐다고 여겼고, 46%는 이혼 경력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느낀다고 밝혔다. 응답자의 60%는 이혼 이후 교제 범위가 좁아졌고, 특히 여성은 남성에 비해 새로운 이성을 찾는 게 2배 이상 힘들었다고 밝혔다.
미국처럼 이혼이 흔한 곳에서도 출신 지역과 커뮤니티 문화, 종교 등에 따라 인식의 편차가 크다. 인도 출신 칼럼니스트 겸 작가 푸자 마키자니(Pooja Makhijani)는 지난해 4월 '이혼의 오명에 맞서며'란 제목의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이혼 전후 자신이 겪은 두려움과 위축감을 고백한 뒤 자신이 살던 뉴저지 주가 이혼 부모를 위해 개설한 교육 세미나에 참가했던 경험을 소개했다. 그는 "나처럼 고동색 얼굴을 지닌 이들도 적지 않다는 걸 보고 위안을 느꼈다"고,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아는 것 자체가, 커다란 해방감과 의지와 오명에 맞설 수 있는 힘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썼다.
아론스의 분석과 논리를 부정하는, 즉 이혼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는 연구들도 적지 않았다. 이혼과 아동심리를 연구하고 다수의 책을 낸 저자 엘리자베스 마쿼트(Elizabeth Marquardt)는 '이혼가정 아이들의 내밀한 삶'이란 부제를 단 2005년 책 'Between Two Worlds'에서 "좋은 이혼이란 건 없"으며 "어떤 형태건, 우호적이든 아니든, 이혼은 아이들의 내면의 삶에 지속적인 갈등 요인으로 남게 된다"고 주장했다. 여성 심리학자 주디스 월러스타인(Judith Wallerstein, 1921~2012)은 1971년 캘리포니아의 60개 이혼가정의 3~18세 아동 131명을 대상으로 25년간 연구, 이혼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받은 아이는 40%에 불과하며, 아이들이 부모의 이혼으로 겪는 정서적 악영향은 긴 잠복기를 가질 수 있고 생각보다 오래 지속된다고 주장했다.
아론스는 1999~2000년 자신의 원년 연구 샘플 즉 이제는 성인이 된 77년 당시의 아이들 중 약 90%인 173명을 추적, 인터뷰했다. 2004년 출간한 'We're Still Family'란 책에서, 피면담자의 약 79%가 "부모의 이혼은 좋은 결정이었다"고 답했으며, 부모도 이혼으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다(79%)고 답했다고 썼다. 책에서 그는 "차이를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은 (이혼 자체가 아니라) 이혼 과정과 이후 커플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이며 "(생)부모와 자녀가 구축하는 신뢰와 이해의 정도"라고, 그건 이혼을 하든 결혼관계를 유지하든 마찬가지라고 썼다. 2007년 인터뷰에서 그는 "부모로서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면서 안정적이고 안전한 가정환경을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어렵더라도 이혼 커플이 추구해야 할 목표"라고 말했다. 사실 그 결론은 "이혼 이후의 삶의 질이 주요 변수"라고 했던 월러스타인의 결론과도 다르지 않았다. 아론스는 저 책에서 "이혼은 가정(가족)을 파괴하는 게 아니라 재배치하는 것이며, 새로운 구성원들과 함께 가정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썼다. 그것이 그가 만든 '중핵가정(binuclear family)'이란 용어의 의미이자 지향이었다.
조력 자살 등 죽음의 시기와 형식을 선택할 권리를 옹호한 단체 '헴록 소사이어티'(Hemlock Society)' 회원으로서, 이혼만큼이나 죽음에 대한 개인의 선택권을 중시했던 그는 지난 9월 악성림프종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뒤 '임종선택법(End of Life Option Act)'으로 의사 조력자살을 법제화한 캘리포니아로 이주, 의료진과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스스로 세상을 떴다. 예정된 죽음을 앞두고 최근 한 인터뷰에서 그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이혼의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긍정적 롤모델을 제시하는 게 생의 목표였다며 '중핵가정'이란 말이 널리 쓰이고, '좋은 이혼'이 대중적 인식에 자리잡은 게 무엇보다 기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