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회사 전시관에 차가 보이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방문객들조차 어리둥절해하는 듯했다. 5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 2022' 행사가 열린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웨스트홀에 마련된 현대자동차그룹 부스에서 연출된 이색적인 장면이다. 잘 빠진 유선형 전기차 등을 비롯해 최신형 신차 중심으로 구성된 경쟁사 전시관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모습이다.
전시관 입장을 위해 길게 늘어선 대기 행렬에선 경쟁사의 전시관 못지않은 인기도 실감할 수 있었다. 전날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비전 발표에 등장했던 로봇개 '스팟' 트리오의 깜짝 공연 덕분이었다. 엎드려 있던 스팟들은 현대차와 방탄소년단(BTS) 측이 공동 제작한 ‘아이오닉: 아임 온 잇’이란 노래가 나오자,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깡충깡충 뛰거나 박자에 맞춰 한쪽 앞발만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는 가운데 무난한 관절 꺾기와 함께 자로 잰 듯한 '칼군무'도 무리없이 소화했다. 사회자가 설명할 땐, 관람객 앞으로 다가와 강아지가 주인을 쳐다보듯 고개까지 갸웃거리는 모습도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현대차가 전공인 차 대신 로봇을 전면에 내세운 건 정의선 회장이 전날 ‘이동 경험의 영역을 확장하다’란 주제로 발표한 현대차 미래 모빌리티의 핵심인 로보틱스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회장조차 “갈 길이 멀다”고 했지만, 가야 할 길인 ‘메타모빌리티’를 구현하기 위해 현대차가 지금까지 노력한 결과물을 가시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정 회장은 로보틱스와 확장된 가상세계인 메타버스를 결합해 이동 영역 개념을 확장시킨 '메타모빌리티'를 미래 청사진으로 제시했다.
현대차에서 스팟에 이어 선보인 소형 모빌리티 플랫폼 ‘모베드’(MobED)나 ‘플러그앤드라이브’(PnD) 모듈이 장착된 퍼스널 모빌리티도 마찬가지였다. 조그만 1인용 공중전화 부스만 한 공간에 앉은 사람이 조이스틱을 조종하는 것만으로 제자리에서 돌고, 옆으로도 나란히 이동했다. 4개의 바퀴가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 가능해진 움직임이다.
조그만 모니터에 바퀴가 넷 달린 형상의 모베드가 과속방지턱을 통과할 때, 바퀴마다 높낮이가 달라지면서 충격은 최소화됐고, 계단을 오를 때도 차체는 수평에 가까웠다. 심지어 진행방향 앞쪽 바퀴 중 한쪽을 고정하고, 그 바퀴를 축으로 회전도 했다. 제각기 다른 동작을 취할 수 있게 해준 인휠 모터가 바퀴에 장착된 덕분이다.
다만 로보틱스와 달리, 메타버스 체험관은 아직까지 미흡했다. 체험에 나선 관람객의 아바타가 실제 관람객 사진을 찍어 가상세계 내에서 전달하면 관람객이 실물 사진을 손에 쥐게 되는 과정이 진행됐다. 아직 확립되지 않은 메타버스 개념처럼 보완이 필요해 보였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가 아닌, 미래 비전으로 제시된 개념이기 때문에 향후 기술 개발과 함께 자리를 잡아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