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권의 부동산 정책은 대선 캠프 '정책 키맨'의 복안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았다. 박근혜 정부에서 행복주택 밑그림을 그린 서승환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나 문재인 정부의 임대사업 등록 제도를 추진한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대표적이다.
부동산 업계에선 비슷한 이유로 임재만 세종대 공공정책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김경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주목한다. 두 인물 모두 수십 년간 부동산 정책을 연구한 권위자지만, 주창하는 부동산 철학은 정반대다.
두 후보는 이들의 철학을 토대로 저마다 대규모 공급확대와 시장안정을 공언하고 있지만 시장은 양측 모두 실행계획이 불분명하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3일 정치권과 부동산 학계에 따르면 이 후보의 부동산 정책 설계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정책자문그룹인 '세상을 바꾸는 정책 2022(세바정)'에 자문역으로 참여한 임재만 교수다. 임 교수는 현재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 변창흠 전 국토부 장관과 함께 세종대에서 부동산학을 가르치고 있다.
토지의 공공성을 중시하며 토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환수해야 한다는 임 교수의 철학은 그가 지난해 6월 공동저자로 참여한 '공정한 부동산, 지속가능한 도시'에서 엿볼 수 있다. 경기연구원이 기획한 이 책은 이 후보 부동산 정책의 '미리보기판'으로 꼽힌다. 이 책에서 임 교수는 "보유세 실효세율을 높이고 자산 불평등 완화를 위해 보유세제를 누진세율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이 같은 철학은 이 후보 부동산 공약의 핵심인 '토지이익배당금제(국토보유세)'와 맞닿아있다. 일부 고가 주택만 대상으로 하는 종합부동산세와 달리 모든 토지에 보유세를 과세해 실효세율을 1%까지 끌어올리는 게 국토보유세의 목표다. 지난해 말 출범한 이 후보 직속 부동산 개혁위원회는 선언문을 통해 한국을 '부동산 불로소득 공화국'으로 명명하면서 토지이익배당금제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각에선 최근 이 후보의 양도소득세 중과 1년 유예와 일시적 다주택자 보유세 완화 주장을 두고 "아예 노선을 튼 것 아니냐"라는 해석이 나오지만 그렇게 보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정책기조 자체가 기본소득 재원 마련을 위한 '세제 강화'에 방점이 찍혀 있는데다,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과세 체계 자체는 손질해야 한다는 게 임 교수의 견해이기도 해서다.
임 교수는 전세 제도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공공의 주택 공급 역할을 강조하기도 한다. 전세가 갭투기의 수단으로 활용될 개연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정부가 월세 지원을 확대, 전세와 비교해 가격 경쟁력을 갖는 월세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공이 공급하는 안정적 임대주택의 중요성도 역설한다.
이는 임 교수가 세바정의 '기본주택' 설계에 참여하며 구체화됐다. 기본주택은 무주택자가 건설 원가 수준의 저렴한 임대료로 역세권 등에서 30년 이상 거주 가능한 공공주택이다. 이를 통해 현재 전체 주택의 5% 수준인 장기 임대공공주택 비율을 1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또 이 후보는 지난 2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최대 5년 전 월세까지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이월공제를 도입하고 적어도 두달 치 월세를 되돌려받을 수 있도록 공제율을 높이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윤석열 후보 캠프의 부동산 책사는 '서강학파'로 꼽히는 김경환 교수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토연구원 원장을 거쳐 국토부 1차관을 지내면서 행복주택과 뉴스테이 등 굵직한 임대주택 사업을 추진했다. 현재는 윤 후보 캠프의 부동산 정책을 맡고 있다.
학계에서 바라보는 김 교수는 임 교수와는 대척점에 있는 시장경제주의자다. 윤 후보 캠프에서도 김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강화한 규제를 원점으로 돌리는 데 주안점을 두고 정책 자문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게 민간 참여 활성화다. 공공은 조연 수준으로 빠지고 시장에 주택 공급 역할을 적극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구상은 윤 후보의 1호 공약에서 드러났다. 대선 출마 선언 후 첫 정책 공약으로 윤 후보는 이 후보와 똑같이 '5년간 250만 가구 공급'을 약속했다. 하지만 공공이 공급하는 목표 물량은 50만 가구로 기본주택의 절반 수준이다. 또 모두 분양형이다. 주택 공급을 위해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완화해 문재인 정부에서 위축된 민간 참여를 활성화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세제 강화에 대해서도 김 교수와 임 교수의 입장은 극명히 갈린다. 지난해 한 언론 인터뷰에서 김 교수는 "(이재명 캠프 측이 목표로 하는) 선진국 수준의 실효세율은 세금 강화의 근거가 될 수 없다"며 "미국의 보유세율은 주민들이 동의한 수준에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과 세제는 투기억제를 위한 부동산 정책의 보조 수단이 아니다"라는 발언도 했다.
윤 후보의 부동산 세제 정책도 이와 유사하게 일관되게 '완화'를 강조한다. 이 후보의 '양도세 중과 1년 유예' 공약에 맞서 '2년 유예안'을 내놓았고 취득세는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는 면제 또는 1% 단일세율을 적용하는 등 세율을 완화하겠다고 했다. 보유세는 1주택자의 세율을 현 정부 이전 수준으로 인하하고 종부세와 재산세를 통합해 과세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후보와 윤 후보가 현재까지 제시한 부동산 공약은 두 키맨의 '색깔'만큼 차이가 선명하다. 모두 임기 내 250만 가구 공급을 내걸었지만 이 후보는 문재인 정부처럼 공공주도, 윤 후보는 민간주도로 방식이 다르다. 부동산 관련 규제에 대해서도 이 후보와 윤 후보는 각각 강화와 완화로 극명히 갈린다.
겹치는 부분도 있다. 이 후보의 기본주택과 윤 후보의 청년 맞춤형 분양주택인 '청년원가주택'은 건설 원가 수준에 공급한다는 게 비슷하고 아직까지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안이 빠져 있다는 것도 똑같다.
부동산 규제 강화나 완화 효과에 대한 기본적인 분석도 내놓지 않고 공약부터 밀어붙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익명을 요구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양쪽 모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를 내세우는데 '8·2대책'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매물 출회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공급 목표인 250만 가구에 대해서도 업계에서는 "5년간 너무 많은 물량이라 대선을 앞두고 표심을 노린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본주택의 경우 선례조차 없는데 100만 가구를 어떻게 추산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5년이란 시간에 집착하기보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공급계획을 구체화해서 실행 가능성에 중점을 둬야 하는데 두 후보 모두 이 부분이 미흡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