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재산 기부' 김밥 할머니가 김정숙 여사 손 잡고 눈물 보인 까닭은

입력
2022.01.03 14:00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김밥 팔아 모은 6억5,000만 원 기부한
박춘자 할머니 사연 페이스북·칼럼 통해 공유
박 할머니, 김 여사 부축에 아버지 생각나 눈물

평생 김밥을 팔아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한 박춘자 할머니의 사연이 누리꾼들 사이에 다시 회자되며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박 할머니의 사연이 재조명된 건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가 한국일보에 쓴 '이 시대의 성자(聖者) 김밥할머니'라는 칼럼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서다.

남궁 교수가 박 할머니의 사연을 조명한 계기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의 초청으로 지난달 3일 청와대에서 열린 행사였다. 연말연시를 맞아 이웃을 살피고 돕는 국내 주요 기부단체와 기부자 등을 초청해 격려하는 자리였던 당시 행사에 박 할머니는 남한산성 길목에서 김밥을 팔아 모은 전 재산 6억5,000만 원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등에 기부한 기부자 자격으로 참석했다. 남궁 교수도 아동보호단체의 홍보대사 자격으로 행사에 참석했다.

그런데 김정숙 여사의 손을 잡고 박 할머니가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남궁 교수는 그 뒷이야기를 페이스북 글과 칼럼을 통해 전했다. 남궁 교수는 2일 페이스북에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고액 기부자로 참석한 한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대통령, 영부인, 비서실장, 단체의 이사장, 유명 연예인 틈의 왜소한 체격의 구순 할머니. 그 대비는 너무 뚜렷해서 영화나 만화 속 장면 같았다"며 "어느덧 할머니의 차례가 되자 대통령 내외는 직접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부축하러 나갔다. 전 재산을 재단에 기부한 분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영부인의 손을 잡은 할머니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고 기억했다.


김정숙 여사가 부축하자 아버지 생각나 눈물

김정숙 여사 옆자리에 앉은 박 할머니는 발언 차례가 오자 "저는 가난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어머니가 없었다. 아버지와 근근이 힘든 삶을 살았다"며 "돈이 없어 배가 고팠다. 배가 고파서 힘들었다. 열 살부터 경성역에 나가 순사의 눈을 피해 김밥을 팔았다. 그렇게 돈이 생겨 먹을 걸 사 먹었는데, 먹는 순간 너무나 행복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그게 너무나 좋아서 남한테도 주고 싶었다. 돈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주면 이 행복을 줄 수 있었다"며 "그 뒤로는 돈만 생기면 남에게 다 주었다. 나누는 일만큼 기분 좋은 일이 없었다"고 기부를 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박 할머니는 "그렇게 구십이 넘게 다 주면서 살다가 팔자에 없는 청와대 초청을 받아 이런 일이 있나 싶었다"며 "그런데 방금 (김정숙 여사가) 내밀어 주시는 손을 잡으니, 갑자기 어린 시절 제 손을 잡아주던 아버지의 손이 생각났다. 그래서 귀한 분들 앞에서 울고 말았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남궁 교수에 따르면 박 할머니의 말에 김 여사 또한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박 할머니는 전 재산 기부뿐만 아니라, 40년 전 길에 버려진 발달 장애인을 가족처럼 돌보며 산 것으로 알려졌다. 할머니는 셋방을 뺀 보증금 2,000만 원마저 기부하고 거처를 옮겨, 본인이 기부해 복지시설이 된 집에서 평생 돌보던 장애인들과 함께 살고 있다.


누리꾼 "진정한 어른, 선행 따를 것... 건강하시길"

남궁 교수는 "할머니는 그 따뜻한 손을 나눠주기 위해 자신이 얻은 모든 일생을 조용히 헐어서 베풀었다"며 "구순이 넘는 육신과 이미 모든 것을 기부했다는 사실만큼 당신을 완벽히 증명하는 것이 없었다. 그 패배가 너무 명료해 '봉사'라는 명목으로 모인 사람들은 그 앞에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기분이었다"고 적었다. 이어 "어떤 한 생은 지독하고도 무한히 이타적이라 무섭고 두렵기까지 하다"며 "그것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존재를 직면했을 때 경험하는 경배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글로 재조명된 박 할머니 사연에 누리꾼들도 감동적이라는 반응을 쏟아냈다. 이들은 "진정한 대한민국의 어머니십니다. 당신의 선행을 따라하겠습니다."(don0), "진정한 어른이시다"(dhgu****), "할머님의 따뜻한 마음 1,000분의 1이라도 닮고자 노력하며 살겠습니다"(klye****), "세상에 이런 분도 계시네요. 감히 흉내조차 내기 어려운 삶을 살아오셨네요"(cong****)라며 박 할머니에게 경의를 표했다.

또 "남한테 주는 기쁨은 많이 누리셨으니 부디 오래오래 건강히 나를 위해 사는 기쁨 또한 이제는 충분히 누리시길 바랍니다. 그게 그동안 베품 받은 분들의 마음일것 같아요"(ssay****) 등 박 할머니의 건강을 기원하는 누리꾼도 많았다.

박민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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