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아동을 꼭 법정에 세워야 하나

입력
2021.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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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 우리나라에서 아동학대 사건의 가해자가 형사처벌되는 비율이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9년 아동학대 3만45건 중 형사사건 처리된 것은 1만998건에 그쳤다. 문제는 처벌까지 이어진 것이 고작 361건, 전체의 1%를 조금 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증가세는 가파르다. 2015년 1,240건에서 2019년 3,431건으로 약 3배 가까이 늘었다. 아동학대가 급증하는 데도 처벌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아동학대 사건은 피해진술 외에 다른 객관적인 증거가 거의 없다. 이유는 가해자 대부분이 부모이기 때문이다. 2019년 아동학대 사건의 82%가 부모가 가해자이며, 가해 부모 중 76%가 친부모이다. 가해 장소의 79%는 '가정 내'이다. 가해자가 절대적인 통제권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범죄가 이루어진다는 얘기다. 게다가 "부모가 오죽했으면"이라는 가족 이데올로기까지 더해지면서 부모의 학대 가능성은 애초에 축소된다. 이 때문에 아동학대는 대부분 심한 멍과 상처 같은 가시적인 피해 흔적이 외부인에게 우연히 발견되어 사건화된다. 한마디로 범죄의 사건화 자체가 쉽지 않다.

아동학대 처벌이 어려운 두 번째 이유는 우여곡절 끝에 사건이 성립됐다 하더라도 사실상 거의 유일한 증거인 피해진술의 확보가 어렵다는 점이다. 피해 아동의 연령대는 발달과정상 의사소통 능력이 제한적이다. 게다가 피해 아동은 학대로 인한 극도의 불안한 정서 상태에서 진술을 해야 한다. 가해자가 부모인 경우, 부모 고발의 부담감과 부모의 보복에 대한 공포와 대면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린 피해자가 형사사법절차상의 제도적 배려와 조력 없이 제대로 된 진술을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동학대의 이러한 특성을 고려한 법률조항이 '아동학대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제17조 1항이다. 이 조항의 요체는 아동학대 피해자가 법정에 나오지 않고 편안한 장소에서 진술을 도와줄 조력자가 동석한 상태로 진술을 녹화한 후, 그 영상을 증거로 인정해주는 것이다. 이 조항은 애초에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에서 19세 미만의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제도로 도입되어 아동학대법에도 준용됐다. 성폭행 피해 미성년(19세 미만)과 학대 피해 아동(18세 미만)은 법정에 부를 경우 반복되는 피해 진술로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법이 인정한 것이다. 이 조항 덕분에 피해 아동은 그동안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받으며 피해 진술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12월 23일 헌법재판소가 위 성폭력특례법 조항에 대해 단순위헌 결정을 내렸다. 반복된 피해 진술로 인한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법 조항이 고인의 방어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것이다. 아동학대법에서도 이 조항의 효력이 즉각 상실됐다. 당장 미성년자가 피해자인 성폭력 및 아동학대 재판에선 진술 영상녹화물을 증거로 쓰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제 반대신문이 뭔지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아동조차도 법정에서 가해자 변호사의 날 선 신문을 받아야 한다. 가해자 처벌을 위해서 고통스러운 과정을 감수해야 하는 피해 아동들의 신고나 진술은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아동학대 가해자의 형사처벌률이 1%이고 그마저도 벌금형이 25%인 한국사회는 이미 아동들에게 충분히 잔혹했다. 그나마 있던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걷어 내고 기어이 아동학대 형사처벌률 0%의 '아동 지옥'을 만들어 놓을 셈인가.


박수진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