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없는 핵폐기물… "일단 계속 묻자” 방침에 원전 지자체 '폭발'

입력
2021.12.28 04:30
"정부 방침은 고준위 핵폐기물 기한 없이 저장"
원전 인근 지자체까지 반발 "원점 재검토" 촉구
정부 해법 못 찾을 경우 '부안 사태' 불러올 수도

원자력발전소 가동 후 남은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 부지를 찾지 못한 정부가 기존 원전 부지 안에 폐기물을 보관하는 계획을 확정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7일 고준위방폐물 기본계획안을 행정예고한 지 20일 만이다. 원전이 위치한 지자체들은 의견 수렴 없는 일방적 결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정부가 주민들 마음을 달랠 묘수를 찾지 못하면 갈등은 더 증폭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부겸 국무총리 주재로 제10회 원자력진흥위원회를 열고 '제2차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의결했다. 최종 처리시설 확보 전까지 고준위핵폐기물을 원전 부지 안에 계속 보관하는 내용이 골자다.

방폐물 계획안 원점 재검토 촉구

원전이 자리잡은 광역자치단체에선 정부 방침을 한목소리로 반대했다. 울산과 부산, 전남, 경북 등 원전이 있는 전국 4개 시·도로 구성된 원전 소재 광역지자체 행정협의회는 이날 "정부가 지역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어떤 노력 없이 행정 절차로만 밀어붙이고 있다"며 "방폐물 기본계획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날 산업부에 고준위 핵폐기물 관리 기본계획 원점 재검토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준하는 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시설 설치·운영에 관한 법 개정 등이 담긴 공동건의서를 제출했다.

기초자치단체도 발끈했다. 특히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별도 조성을 조건으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유치한 경주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정부는 2015년 경주에 발전소 작업자들의 옷이나 장갑 등 상대적으로 방사능 세기가 약한 중저준위 폐기물을 처리하는 방폐장을 가동했다. 그러면서 월성 원전 부지 내에 보관 중인 고준위 핵폐기물은 다른 지역으로 옮기기로 약속했지만, 5년이 지나도록 지켜지지 않고 있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정부가 중ㆍ저준위방폐장 입지 선정 당시 사용후 핵연료는 분리해 추진한다고 한 것은 지키지 못할 약속이었다"며 "지금이라도 공식 사과하고, 수십 년 이상 임시 저장하는 데 따른 보상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반발은 원전 인근 지역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울산 중구와 부산 해운대구, 대전 유성구, 강원 삼척시 등 원전 인근 지역 16개 지자체로 구성된 전국원전인근지역동맹도 이날 성명서를 내고 “43년간 부지 선정도 못하고 있는 핵폐기장이 완성될 때까지 원전 내에서 계속 보관하고 추가로 임시저장시설을 짓겠다는 발상은 314만 국민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시민단체들도 비판에 가세했다. 16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고준위 핵폐기물전국회의(전국회의)는 이날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 방침은 사실상 고준위핵폐기물을 기한 없이 저장하겠다는 것”이라며 “지역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부도덕한 관리 정책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탈핵부산시민연대도 "최소 10만 년을 보관해야 하는 핵폐기물 관리 정책을 20일 만에 수립하는 것은 발전소가 있는 지역과 미래 세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행위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2003년 부안 방폐장 사태 재연 우려도

반발 움직임이 확산되면서, 정부가 해법을 찾지 못할 경우 갈등이 증폭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일각에선 대규모 유혈 충돌을 불렀던 2003년 전북 부안 방폐장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관측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맡았던 정정화 강원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영구처분시설 확보는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매우 어렵다"면서 "사실상 임시 저장시설이 중간저장시설임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울산= 박은경 기자
안동 경주= 정광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