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강화', 왜 하필 1987년인가" vs "역사 왜곡 주장은 근거 없는 문화 폭력"

입력
2021.12.27 13:46
5회 반전으로 오해 해소? 잡음 지속
드라마 '설강화' 민주화 훼손 논란 두 가지 시선

종합편성채널 JTBC 드라마 '설강화'를 둘러싼 민주화 역사 훼손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제작진은 26일 방송된 5회에서 남파 간첩인 수호(정해인)가 여대생 영로(지수)를 인질로 잡는 내용으로 간첩 미화 등 역사 왜곡에 대한 오해가 풀릴 것이라 기대했지만, 잡음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이 논란은 "창작의 자유는 역사적 상처 앞에서 겸허해야 할 것"(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이란 비판과 "이념 깡패들의 횡포"(진중권)라는 의견으로 나뉘어 드라마 존폐에 대한 갑론을박이 여전히 뜨겁다. 본보는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와 주창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과 교수의 특별기고로 '설강화' 논란을 두 가지 시선으로 짚는다.


"논란의 핵심은 인물이 아니라 시대적 배경"
1987년에 대한 '설강화'의 극적 상상력은 이렇다. 남한의 군부정권은 정치적 기득권을 연장하기 위해 그토록 적대시하던 북한의 수뇌부와 은밀하게 접촉한다. 남한의 대통령 선거에 개입하기 위한 목적으로 간첩이 남파된다. 12·12 군사 쿠데타에 동조하지 않았음에도 안기부의 수장이 된 아버지와 거리를 두던 여대생은 학생운동과 상관없이 기숙사 생활을 만끽한다. 그런데 안기부 요원에게 쫓기던 남파 간첩은 여대 기숙사로 숨어든다. 여대생은 학생운동을 하다 강제 징집당한 오빠 생각에 그를 숨겨준다. 이들은 이렇게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이 된다. '설강화' 논란의 핵심은 인물이 아니라 시대적 배경이다. 1987년은 군부독재타도를 외치며 수많은 희생을 치른 끝에 마침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해이다. 하지만 결과는 허망했다. 12·12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의 동료 노태우가 직선제 개헌의 열매를 가져간 것이다. 언론 통제로 진실을 알지 못했던 유권자들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기 위해 대학가에 침투한 용공 세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군부정권의 주장에 쏠린 결과였다. 여대생이 남파 간첩을 운동권 학생으로 오해하면서 도와준다는 '설강화'의 극적 상황은 군부정권에 의해 조작된 용공 사건을 사실로 왜곡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시청자들이 군부정권에 의해 조작된 수많은 용공 사건을 매개로 '선호된 독해(시청)'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구 기득권 세력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정권 유지 무기로 사용했고, 효과는 그만큼 강력했다. 따라서 '설강화' 제작진은 군부정권이 북한 독재 정권과 야합해 음모를 벌이는 가상의 내용이기 때문에 남파 간첩이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거나 이끄는 설정이 없다는 변론에 앞서 하필이면 왜 1987년 대통령 선거 정국이어야 했는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1987년은 한국 민주화 운동의 분수령으로 평가 받는 현재진행형의 역사이기에 더 그렇다. 첨예한 정치적 대립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군부정권의 정치적 거래가 있었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1987년 대통령 선거 정국에 대한 '설강화'의 극적 상상력 또한 개연성을 담보하고 있다. 하지만 남파 간첩이 민주화 운동 세력으로 오해된다는 인물 설정은 제작진의 의도와 달리 해석될 여지가 많다. 직선제 개헌 수용을 골자로 하는 6·29 민주화 선언을 끌어낸 6월 항쟁의 배후에 용공 세력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군부정권의 후예들이 여전히 활개 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남파 간첩과 여대생의 사랑보다 1987년을 '설강화'의 시대적 배경으로 설정한 이유가 명료하지 않은 것이 문제이다. 왜 1987년이었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


"'설강화'가 역사 왜곡이면, '써니'도 그런가?"
'설강화' 역사 왜곡 논란이 거세다. 3월 '조선 구마사'가 반중 정서와 가짜 뉴스로 설정된 프레임으로 단지 2회 방영하고 폐지된 것과 마찬가지로, '설강화'도 민주화 운동의 훼손과 안기부와 간첩 미화라는 비논리적인 주장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조선 구마사'와 마찬가지로 2회 방영됐을 때부터 방영 중지를 요구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방송된 드라마 어디에도 역사를 왜곡했다는 근거와 개연성조차 없다. 역사 왜곡이라는 말 자체가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설강화'는 민주화 운동을 훼손하거나 안기부를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1987년 대선 국면을 앞두고 정치 권력과 안기부의 공작 정치를 비판적으로 그려낸다. 대통령 앞에서 정치 실세들이 칼로 손가락을 베어 흘린 피를 술잔에 담아 마시거나 안기부장과 여당의 사무총장이 중국에서 북한 고위급 인사와 비밀회담을 하면서 대가로 1억 달러를 제공하는 장면을 통해서 북풍을 대선에 이용하려는 권력의 거짓과 음모를 비판한다. 안기부 요원인 강무가 남파공작원 수호를 쫓는 과정에서 나오는 '솔아 솔아 푸르는 솔아'를 문제 삼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나오는 노래는 배경 음악이 아니라 시위 상황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미장센의 일부다. 쫓고 쫓기는 과정에서 긴장감 있는 배경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시위 상황을 재현한 것이다. '님을 위한 행진곡'이나 '농민가' 등을 부르는 것은 당시 시위에 앞서 진행되는 의례였다. 공정 선거나 민주 권리를 요구하는 시위대 장면과 추격 장면을 대비시킴으로써 남북의 정치 공작을 비판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설강화'의 역사 왜곡을 주장하는 논리대로라면, 영화 '써니'야말로 민주화운동을 훼손한 영화다. 민주화 시위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칠공주와 소녀시대는 패싸움을 하고 흥겨운 댄스음악이 나오면서 시위대를 코믹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사랑의 불시착'도 간첩을 미화한 드라마이며, '공동경비구역'은 분단 현실을 왜곡한 영화가 된다. 주장의 근거도 설득력도 없는 내용으로 방송 중지를 청원하는 것 자체가 도리어 민주주의의 가치는 훼손하는 일이다. 올해 두 번이나 놀랍고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이 현실이 '웃프다'. 지금 이 상황은 표현의 자유와 문화의 자율성에 대한 폭력이기 때문이다. 주창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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