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사면' 대형 변수에 셈법 복잡해진 이재명·윤석열

입력
2021.12.2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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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대선을 70여 일 앞두고 ‘박근혜 사면’이라는 대형 돌발변수를 만난 정치권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안 그래도 하루가 멀다 하고 민심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 사면이 대선 정국에 몰고 올 후폭풍을 놓고 득실을 따지느라 여야 모두 초긴장 모드로 돌아섰다.

이재명, 찬·반 즉답 피했지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이날 박 전 대통령 사면에 찬성하냐는 취재진 질문에 “이미 결정이 난 사안인데 찬성, 반대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즉답을 피했다. 앞서 발표한 입장문에서는 “문재인 대통령님의 국민 통합을 위한 고뇌를 이해한다”고 두둔했다. 그러면서도 “지금이라도 박 전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죄가 필요하다. 현실의 법정은 닫혀도 역사의 법정은 계속된다”고 강한 여운을 남겼다. 용서의 전제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만큼 박 전 대통령의 잘못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후보는 줄곧 박 전 대통령 사면에 부정적이었다. 2017년 성남시장 신분으로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했을 때는 “박 전 대통령은 사면 금지”라고 못 박아 말할 정도였다. 꾸준한 사면 금지 입장 덕에 올 초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이명박ㆍ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론을 꺼냈다가 역풍을 맞자 반사 이익을 누리기도 했다.

일관성을 지키되, 여당 후보로서 현직 대통령을 무시할 수 없는 점 등을 두루 고려해 ‘절충적 태도’를 취했다는 해석이 많다. 여기에 박 전 대통령 사면을 반기는 대구ㆍ경북(TK) 민심과 반발하는 여권 핵심 지지층도 감안했을 것으로 보인다.

당혹스러운 감정은 사면 ‘존중’과 ‘반대’ 목소리가 교차하는 당내 분위기에서도 감지됐다. “문 대통령의 사면을 존중한다(송영길 대표)” 등의 긍정론도 있고, “박근혜를 사면해주면 종범(從犯)인 최순실(최서원)도 풀어 줘야 하느냐(안민석 의원)”는 강경론 역시 엄존한다. 당론 조율이 쉽지 않다는 의미다.

속내 더 복잡한 윤석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속내가 훨씬 복잡하다. 그는 “늦었지만 환영한다”며 겉으론 박 전 대통령 사면을 반겼다. 그러나 과거의 악연은 여전히 윤 후보를 옥죄고 있다. 그는 5년 전 국정농단 특검의 수사팀장을 맡아 박 전 대통령 사법 처리 선봉에 섰고, 검찰총장까지 초고속 승진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박 전 대통령 지지자나 TK 일각에서 윤 후보를 싸늘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윤 후보는 2019년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시 허리디스크 통증을 호소한 박 전 대통령의 형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력에도 거리를 뒀다. “형집행정지 위원회에서 결정한 것을 따른 것일 뿐”이라며 책임 논란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도 “직책상 (수사를) 한 것이지 일부러 하지 않았다”면서 윤 후보 엄호에 나섰다.

다만 국민의힘 선대위 안에선 지나친 박 전 대통령 끌어안기를 경계하는 기류도 읽힌다. 자칫 ‘탄핵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탓이다. 김 위원장은 “박 전 대통령도 정권 교체 외 다른 입장을 가질 수 없기에 윤 후보에게 방해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사전 진화를 시도했다.

선대위와 결별한 이준석 대표는 이번에도 결이 다소 다른 입장을 내놨다. 그는 “입법부로서 충분한 견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국민께 송구하게 생각한다”면서 탄핵 과정의 실책을 거론했다. 윤 후보의 수사를 제어하지 못했다는 반성으로도 볼 수 있다.

심상정 "역사 뒤틀어", 안철수 "이석기 물타기"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 복권 문제에서 뚜렷한 대척점을 형성했다. 홍영표 민주당 의원은 “대한민국을 위해 다시 큰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고 한 전 총리의 정계 복귀를 응원한 반면, 국민의힘 선대위 이양수 수석대변인은 “결국 정권이 정치적 면죄부를 줬다”고 맹비난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대통령 개인의 동정심으로 역사를 뒤틀 수는 없다”면서 대선후보 가운데 가장 강도 높게 박 전 대통령 사면을 비난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박 전 대통령 사면은 환영하면서도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가석방에 대한 저항을 줄이기 위한 물타기”라며 문 대통령의 사면 의도에 비판 초점을 맞췄다.

이성택 기자
강진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