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임인년(壬寅年) 검은 호랑이의 해를 맞아 호랑이를 주제로 기사를 준비하던 중 한국 호랑이와 표범 보전기관인 '한국범보전기금'을 이끄는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로부터 들은 말이다.
생각해보니 수년째 동물 관련 기사를 쓰고 있지만 호랑이를 주제로 다룬 적은 많지 않다.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동물이라고 하면 호랑이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텐데 한반도 토종 동물이라고 하면서 정작 우리는 호랑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또 우리는 그에 맞는 대우를 하고 있을까.
국내에서 호랑이를 볼 수 있는 곳은 동물원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17곳에서 98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호랑이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과거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 러시아 극동지역에 살았던 시베리아 호랑이, 즉 한국호랑이는 45마리다.
국내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호랑이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두 마리가 떠올랐다. 먼저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났던 호랑이 '크레인'이다. 크레인의 실상은 황윤 영화감독의 다큐멘터리 '작별'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남매였던 아빠 '태백'과 엄마 '선아' 사이 근친교배로 태어난 크레인은 선천적으로 백내장과 안면기형을 갖고 있었다. 사육사들은 병약한 아기 호랑이가 튼튼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중장비 크레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고 한다. 크레인은 태어나면서 개처럼 목줄을 찼는데 사람 손에 길들이기 위한 과정이었다.
서울대공원은 몸집이 불어나고 부정교합으로 송곳니가 밖으로 나온 크레인을 2004년 강원 원주시 동물원 '치악 드림랜드'로 보냈다. 이른바 못생긴, 비인기동물이 된 크레인을 굳이 데리고 있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드림랜드는 찾는 관람객이 줄고 경영난이 악화하면서 2007년 전기요금조차 내지 못해 단전조치가 내려졌고, 크레인을 포함 동물들은 방치됐다. 이후 시민들의 요구로 크레인은 2012년 서울대공원으로 돌아가 2017년 여생을 마쳤다. 황 감독에 따르면 서울대공원으로 돌아갔을 당시 크레인의 몸무게는 정상 수컷 호랑이의 절반 수준이었다니 드림랜드의 생활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짐작하게 했다. 크레인은 2017년부터 시행 중인 국내 첫 동물원수족관법 제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 다른 비운의 호랑이는 2013년 11월 서울대공원에서 우리를 탈출해 사육사를 숨지게 한 '로스토프'(11세)다. 당시 세 살이던 로스토프는 호랑이사가 공사에 들어가는 바람에 절반 크기의 여우사에서 생활하며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추정됐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로스토프는 그 이후 전시되지 못하고 내실에서만 생활하고 있다. 안락사시켜야 한다는 일부 목소리가 있었지만 관리 부실 책임이 더 크고 선진국의 사례를 참조해 격리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우리는 호랑이의 용맹함 등을 치켜세우며 국가를 상징하는 동물로 활용하고 있지만 정작 호랑이의 삶은 행복하지 못한 것 같다. 특히 토종 동물인 곰, 여우와 달리 호랑이는 정부 차원에서 보전, 복원을 위한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 호랑이해를 맞아 호랑이의 이미지를 이용만 할 것이 아니라 이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