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A상급종합병원은 최근 코로나19 중환자 1명을 준중증 병상으로, 3명을 일반 중환자실로 옮겼다. 일부 암 환자 수술 일정은 뒤로 미뤘다. 중환자실에 코로나19 중환자를 더 받기 위해 취해진 조치였다. 어쩔 수 없다곤 하지만 의료진 마음은 무겁다. 환자 상태 등을 들어 최대한 열심히 설명했지만 안 그래도 오래 기다린 암 환자들은 크게 낙담하는 얼굴들이다. A병원 관계자는 "수술 연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환자 상태가 더 악화되는 건 아닌지 걱정될 지경"이라 말했다.
#서울의 B병원 관계자는 정부의 무책임함을 성토했다. 그는 "만약에 코로나19 중환자나 일반 중환자를 일반 병실 같은 곳으로 옮겼다가 병세가 악화되면, 진료의 의무가 있는 병원과 의료진이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며 "이미 메르스 사태 이후 수년간 이어지는 소송전이 있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병상 확보 명령만 내리면 되지만 그 후폭풍을 병원이 오롯히 감당해야 한다는 얘기다.
코로나19 환자와 일반 환자 간 '병상 제로섬 게임'이 본격화됐다. 정부는 중환자 병상 확보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여전히 상태가 위중한 환자와 보호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병원들은 난감한 표정이다.
23일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0시 기준 위중증 환자는 1,083명이었다. 숨진 사람은 109명으로 코로나 사태 이후 첫 세 자릿수 사망자를 기록했다. 누적 사망자도 5,000명을 넘어섰다. 이날 수도권 중환자실 가동률은 86.3%로 사실상의 포화 상태가 이어졌다.
다급해진 정부는 코로나19 증상 발현 20일이 지난 중환자실 환자들 중 전파 가능성이 떨어진 210명의 환자들에게 일반 병실로 옮길 것을 명령했다. 당국은 "일종의 격리 해제 개념"이라며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하루 100만 원의 과태료까지 물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정부 명령이 안 먹힌다. 명령을 받은 210명 중 71명은 병실을 옮겼고, 18명은 옮길 예정이다. 나머지 중 63명은 병실을 옮길 수 없는 이유를 소명 중이고, 58명은 옮길 병실이 없거나 그저 버티는 중이다. 이는 애초 예상됐던 바이기도 하다.
의료현장 곳곳에선 이로 인한 충돌이 일어났다. 수도권 C상급병원은 중환자실 격리 해제 대상에게 전실을 요구했다가 "나보고 죽으란 소리냐"는 말을 들었다. 의료진 입장에서도 딱히 반박하기가 어렵다. 상황은 호전됐지만 기저질환이 있어서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판단했던 환자여서다.
D병원은 아예 20일이 넘은 코로나19 환자들의 재원 기간 연장 신청을 준비 중이다. D병원 관계자는 "20일 지나도 상태가 나쁜 게 눈에 뻔히 보이는데, 정부가 명령한다고 다 나가라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고 말했다.
투석병상을 운영 중인 E대학병원은 환자를 받아줄 병원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정부는 병원더러 알아서 하라고 내던져 둔 게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E병원 관계자는 정부의 안내나 도움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전날인 22일 한 달 내 병상을 비워 코로나19 환자를 받으라는 명령을 받은 공공병원들도 막막하긴 매한가지다. 그간 공공병원들은 취약계층의 만성질환자들을 도맡아 왔다. 이들 환자는 다른 병원들이 받길 꺼려하는 경우가 많다.
F공공병원 관계자는 "전·퇴원 상담을 하다 보면 환자나 보호자에게 욕을 먹는 건 다반사고, 멱살까지 잡히는 일도 더러 있다"며 "이들이 갈 곳이 없다는 걸 뻔히 아는 우리도 난처할 뿐"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다음 달 말까지 어떻게든 병실을 확보하라지만, 정해진 기한 내 병실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확답하기 어렵다.
여기엔 의료 윤리와 법적 책임 문제도 놓여 있다. 중환자실에서 내보냈는데, 그 때문에 상태가 악화돼 후유증이 남거나 사망하는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지느냐는 것이다.
동시에 간호사 확보 방안도 함께 내놓으라는 요구도 많았다. 수도권 코로나19 전담 G병원 관계자는 "정부가 인력을 지원해준다지만 제때 확보가 안 되니 있는 병상도 제대로 가동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수도권 H공공병원은 최근에만 정규직 5명 포함, 7명의 간호사가 그만뒀다. 당장 자리를 채울 사람은 없는데, 중환자 배정은 계속 늘고 있다. H병원 중환자실 의사는 "남아 있는 사람이 고생하자, 나가는 사람 이해하고 원망하지 말자며 서로 다독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