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조수진 최고위원의 충돌은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다. 물밑에서 끓고 있던 세력 간 불협화음이 두 사람의 싸움을 계기로 폭발할 조짐이다. 윤석열 대선후보가 만든 용광로 스타일의 선거대책위원회가 시너지를 내기보다 갈등의 토양으로 작용한 탓이다.
갈등 전선도 복잡하다. 이 대표와 '윤핵관'으로 불리는 윤 후보의 핵심 측근 그룹이 가장 요란하게 충돌했다. 선대위를 거푸 헤집어놓은 이 대표의 안티 세력도 점점 커지고 있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과 김한길 새시대준비위원장,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 등 2김(金)도 여전히 불편한 관계다.
총체적 난국이지만, 윤 후보가 사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뛰는 모습은 22일에도 보이지 않았다.
갈등의 한 축은 윤핵관 그룹과 이 대표의 힘겨루기다. 권성동 사무총장, 장제원 의원, 윤한홍 당무지원본부장 등이 사실상 공인받은 '윤핵관' 그룹. 조수진 최고위원도 '범윤핵관'으로 꼽힌다. 이 대표는 이들이 윤 후보의 눈과 귀를 가려 대선 전략을 엉클어놓는다고 주장한다. 이 대표 측 김철근 정무실장은 22일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윤 후보가 상세한 보고를 받지 못하거나 편향된 주장이 가미된 보고를 받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윤 후보와 이 대표는 사진용 화해 제스처를 종종 취하곤 했지만, 줄곧 긴장 관계였다. 이에 이 대표가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도모하기 위해 자꾸 싸움을 거는 것이란 시각이 있다. 국민의힘 당헌상 대선후보가 대선일까지 '당무우선권'을 쥐지만, 이 대표는 윤 후보 측이 당을 장악하게 내버려둘 생각이 없어 보인다.
권 사무총장은 "윤핵관이라는 게 뭘 의미하는지, 실체가 있는 건지 답변하기 부적절하다"고 일축했다. 양측의 갈등이 당분간 평행선을 달릴 것이란 뜻이다.
국민의힘 안팎에선 이 대표를 향한 불만도 터져나오고 있다. '젊은 정치 고수'인 이 대표의 계산된 압박 때문에 '정치 초보'인 윤 후보의 리더십 위기가 부각되고, 결국 정권교체 가능성이 뚝뚝 떨어진다는 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22일 TBS라디오에 나와 "이제 겨우 선대위가 중심을 잡으려는데 온 천하가 떠들썩하도록 만드는 건 처음 보는 일"이라며 선대위를 뛰쳐나간 이 대표를 비판했다. 윤 후보와 가까운 5선의 정진석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정권교체의 대의를 위해 작은 이익은 내려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에 대한 비토 정서가 내년 6월 지방선거 공천권과 얽혀 있다는 해석도 있다. 이 대표는 광역자치단체장 후보를 전부 경선으로 뽑고 공직 후보자를 자격시험을 거쳐 선출하겠다고 예고했는데, 당내 반발이 상당하다. 이 대표 임기는 2023년 6월까지다.
수면 아래엔 더 큰 뇌관이 있다. 윤 후보가 선대위 지휘부로 띄운 '김종인·김한길·김병준 삼각편대'는 한 번도 합을 맞춘 적이 없다.
김종인 총괄위원장과 윤 후보 직속인 김한길 새시대준비위원장 사이엔 고압전류가 흐른다. 김 총괄위원장은 21일 CBS라디오에서 "김한길 위원장과 아직 만나본 적도 없다"고 했다. 녹색당 출신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를 김한길 위원장이 영입한 데 대해서도 김 총괄위원장은 "영입 발표 이후에 알았다"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선대위 관계자는 "김 총괄위원장이 김한길 위원장을 컨트롤할 수 있는 상하관계는 아니다"라며 "언제든 갈등이 폭발할 수 있는 아슬아슬한 상황"이라고 했다.
대선을 77일 앞두고 국민의힘이 집안싸움에 허우적거리지만, 윤 후보는 느긋해 보인다. 윤 후보는 22일에도 "김 총괄위원장에게 모든 걸 일임했다"며 한발 물러나 있었다. '이 대표가 선대위에 복귀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윤 후보는 "정치인으로서 그 결정을 번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제3자처럼 답했다.
대선후보는 김종인이 아닌 윤석열이다. 윤 후보가 사태의 키를 쥐고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5선의 서병수 의원은 22일 페이스북에서 "지금 이 당은 이명박의 한나라당도 아니고 박근혜의 새누리당도 아니고 싫건 좋건 윤석열의 국민의힘"이라며 "모든 책임은 온전히 대통령 후보 본인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라"고 직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