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대만 남부 가오슝 인근. 수송기에서 뛰어내리는 고공낙하 훈련이 한창이다. 낙하산을 맨 군인이 돌연 아스팔트 차도 위로 떨어졌다. 낙하산줄이 꼬여 감기면서 엉뚱한 곳에 착륙했다. 이틀 뒤 인터넷에 해당 장면이 퍼졌다. “죽은 것 아니냐”는 탄식이 빗발쳤다. 그때 네티즌 수사대가 다른 의문을 제기했다. 착용한 위장복과 베레모가 대만군과 다르다는 것이다. 논란이 빗발치자 대만 군당국은 “절차에 따라 진행된 훈련”이라며 “별다른 부상 없이 안전하게 기지로 복귀했다”고 짤막하게 답했다.
해당 군인은 뒤늦게 싱가포르군 소속으로 밝혀졌다. 대만군과 연합군사연습인 ‘싱광(星光)계획’에 참가하고 있었다. 싱가포르가 대만에 병력과 장비를 보내 1975년부터 해오던 훈련이다. 2019년 10월 싱가포르가 중국과 국방협정을 체결하면서 중단했다가 2년 만에 재개했다.
싱가포르는 인구 589만 명(전 세계 113위)의 도시국가다. 국토 면적이 제주도의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722㎢에 불과해 자국 내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공격이 최고의 수비’라는 신조에 따라 영토 밖에서 적과 싸우는 적극적 군사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강대국이 섣불리 덤볐다간 매운 맛을 볼 수 있어 ‘독새우’ 전략으로 통한다.
미국 외교·안보 전문매체 내셔널인터레스트는 9월 “싱가포르군은 작지만 강한 군대”라며 “특히 공군력은 장난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싱가포르는 F-15SG 전투기 40대를 운용하고 있다. F-15는 한국 공군이 60대를 보유한 기종이다. 이 외에 F-16C/D 60대, 조기경보기 4대를 갖췄고 F-35스텔스전투기 도입에도 나섰다. 대만을 포함 미국, 호주, 브루나이, 뉴질랜드 등 우방국에 군사장비를 분산 배치해 유사시를 대비해왔다.
싱가포르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회원국 가운데 경제수준이 가장 높은 국가다. 반면 중국과 수교 시점은 1990년으로 가장 늦다. 동시에 미국과는 군사협정을 체결해 밀착해왔다. 그렇다고 미국으로 완전히 쏠린 것도 아니다. 리셴룽 총리는 미중 간 균형외교 기조를 유지하면서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며 양국을 향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양제츠 공산당 정치국원, 왕이 외교부장 등 중국 외교사령탑이 해외순방에 나설 때마다 싱가포르를 첫 행선지로 택해 각별히 공을 들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중국은 이 같은 싱가포르가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이번 낙하산 훈련 사고를 조롱이 아닌 경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하필 훈련장소가 대만이다. 앞서 10월 차이잉원 총통은 미군의 대만 주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며 ‘하나의 중국’ 원칙의 금기를 깨고 도발 수위를 높였다. 관영매체 중국대만망은 22일 “싱가포르가 군사협력을 재개해 대만의 독립을 지원하는 것이냐”라고 쏘아붙였고, 텅쉰왕은 “외국 군대를 끌어들이려는 차이잉원의 음모”라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